이온 / 크라튈로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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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음유시인 이온의 대화를 다룬 초기 대화편이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많은 경우 질문받는 사람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질문으로 2~3개 정도 던지고, 이를 일반화시켜 상대를 설득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온>과 <크라튈로스>에서도 그러한 방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온>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음유시인 이온은 `호메로스`를 해석하는데는 뛰어나다고 말하는 반면, 다른 시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음유시인의 전문기술은 신으로부터 받은 기술이기에, 어느 분야에 특별히 뛰어나다는 말이 맞지 않는다고 반박을 하고, 이온은 이 말에 동의를 한다.
뒤이어, 소크라테스는 <일리아스>에 나오는 한 구절을 대상으로 이러한 말을 잘 이해하는 것은 해당분야의 전문기술을 가진 장군인가, 아니면 이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인가 하는 문제를 던지고, 별다른 해답이 없이 이에 대한 논의가 끝난다. (플라톤 대화편의 상당수가 `기-승-전-?` 구조라 `용두사미`인 경우가 많은 것같다.)

<이온>에서는 음유시인이 전문기술을 가진 장군, 마부와는 달리 `신들림`상태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존재라는 플라톤의 예술관이 드러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서는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국가>에서 나타난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려했을 때, 다른 전문기술을 가진 이들과 달리 `신들린` 예술가들을 구분시키려는 플라톤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든다.

<크라튈로스>는 소크라테스가 헤르모게네스, 크라튈로스와 같이 `이름`에 대한 대화를 정리한 대화편이다. 작품에서 헤르모게네스와 크라튈로스는 `이름`에 대해 논의를 하고,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름`은 말하기의 일종이며, 이름을 짓는 것은 사물의 `본성`을 반영하는 말하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름을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라 전문기술을 가진 `입법자`에 의해서 이름이 지어져야 하며, 이를 사용하는 문답법에 익숙한 사람인 `감독자`에 의해 정확하게 이름이 지어졌는지 확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Agamemnon, Orestes), 일반명사(heros, anthropoi, eros 등), 신들 이름(Dionysos, Aphrodite 등), 추상명사(sophia, arete 등)을 통해, 본성이 잘 반영된 이름인지 확인한다. 그러면서, 이름은 `관습`과 `합의`에 의해서도 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하며, 지금처럼 모든 경우에 있어서시실여부를 철저하게 살펴보는 삶의 자세를 다른 응답자들에게 권유하며 대화편이 끝난다.

<크라튈로스>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 Idea`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이해되기 어려울 것 같다. 사물의 `이데아`가 가장 잘 표현되는 언어로 이름이 지어진다는 것과 이렇게 이름지어진 사물은 `이름`의 영향을 받아 이상적인 `이데아`로 수렴한다는 것이 본 대화편의 주제편인만큼, `본성`이 이상적인 상태라는 사전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이들 두 대화편의 주된 내용이 그리스 당대에 사용된 언어와 사상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과 역사학자들에게는 유익한 대화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라튈로스> 의 대부분은 그리스어에 대해 이해가 없으면, 재미가 없겠지만, 그리스 언어,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자료가 풍부히 담긴 전문가를 위한 대화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작품을 읽던 중 소크라테스의 `이름 검증`은 그리스 신화 등이 어느 정도 정착된 후대에서 이루어진 사후 검증이기에, `이름이 본성을 반영한다`는 그의 주장은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디오니소스`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 신화가 형성/발전되면서 변화된 이름이기에, 신화가 정착된 시점에서는 당연히 그런 뜻을 담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디오니소스`라는 변화되지 않는 존재의 이데아가 반영된 것처럼 풀이하는 소크라테스의 해설은 시간적인 변화가 고려되지 않은 또는 인과관계가 뒤바뀐 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이온>과 <크라튈로스> 편을 통해서, `예술`과 `이름(정의)`에 대한 플라톤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예술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내림` 같이 `끼`가 발산되어야 하는 것이며, 문학작품을 읽을 때 `원전`이 주는 감동은 번역본과는 또다른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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