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 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e시대의 절대사상 31
김영균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이 이런 방식으로 논박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기술의 중요한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기술자는 그 고유한 영역에서 자신이 목표로 하는 '좋음'을 각 기술의 능력을 발휘해서 도달한다. 그런데 그는 '올바름'의 가치를 다른 기술들의 경우처럼 그것의 내재적 능력에서 찾지 않고 단순히 사회적인 상호 이해관계에서 생기는 결과의 측면에서만 생각한다. _ 《국가 : 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김영균, p57

 

 이 대목은 《국가》의 핵심 질문을 압축한다. 올바름은 단지 관계 속에서 유용한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인가. 최근 플라톤의 《국가》와 관련 입문서들을 읽고 있다. 《국가》는 무엇에 대한 책인가. 전체 10권에 이르는 수많은 주제들 중 곁가지를 걷어내면 결국 '올바름'과 '좋음'의 문제가 남는다. 올바름과 좋음.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올바름은 질서의 문제다. 국가 안에서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의 각 계층이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개인의 영혼 안에서는 이성·기개·욕망이 제자리를 지킬 때 올바름이 성립한다. 한편, 그 질서가 왜 정당한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좋음, 곧 선의 이데아다. 질서로서 '올바름'과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인 '좋음'. 플라톤은 올바름이 그 자체로 좋은 것임을 보이려 한다.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 간의 대화를 읽는다면 전체의 압축판인 제1권의 긴장이 제대로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완벽하게 훌륭한 나라는 지혜롭고 용기 있으며 절제 있고 올바를 것임을 전제하고, 이들 네 가지 가운데 세 가지를 먼저 알게 되면 남아 있는 것을 '올바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_ 《국가 : 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김영균, p142


 이 방식은 올바름이 다른 덕목들과 나란히 놓인 하나의 성질이라기보다, 지혜·용기·절제가 제자리를 잡은 뒤 전체의 배열 속에서 드러나는 질서임을 보여준다. 플라톤이 올바름 그 자체가 좋은 것임을 보이려 한다면, 현실에서 올바름이 좋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표적인 예가 플라톤의 정체 타락론이라 하겠다. 최선의 정체에서 최악의 정체로의 쇠퇴. 이것을 '이데아의 결핍'으로 해석해야 하나. 현상은 이데아의 모상이지만, 모상은 원형을 완전히 보존하기 어렵다. 선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해서 현실 국가가 저절로 선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인간과 국가는 감각, 욕망, 의견, 시간의 변화 속에 있기 때문에 교육과 질서가 무너지면 점차 선에서 멀어진다. 플라톤의 정체 타락론은 제도의 변천사가 아니라, 선을 향하던 영혼의 질서가 기개, 소유욕, 자유로운 욕망, 폭력적 욕망으로 차례로 내려앉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정체의 퇴락은 선의 부재가 아니라, 선과 관계 맺던 힘이 약해지며 질서가 흩어지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현실 속의 좋음은 엔트로피처럼 흩어진다. 선의 이데아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과 관계 맺으며 자신을 유지해야 하는 현실의 질서는 시간이 지나며 쉽게 약해진다.


  만약 최선 정체마저 현실 속에서 생성된 것인 한 붕괴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은 완전한 이데아의 구현이라기보다 이데아의 권위를 빌린 현실 내부의 최선책에 가깝다. 플라톤의 정체 타락론에서 주목할 점은 타락이 단순히 대중의 욕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선 정체의 붕괴는 먼저 수호자 계층의 재생산 실패에서 시작된다. 이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근본적으로 소수의 수호자 계층에 의존하는 체제임을 보여준다. 다수의 욕망을 극소수의 이성이 통제하는 구조라면, 그 체제는 넓은 기반 위에 선 피라미드라기보다 좁은 꼭대기에 전체 무게를 거는 역(逆)피라미드에 가깝다. 최선 정체는 완전한 체제라기보다, 완전성을 지향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자기 붕괴 가능성을 내장한 체제다. 처음부터 붕괴가 예정된 완전성을 결여한 정체를 최선의 정체라 부를 수 있는가. 이 점에서 《국가》의 최선 정체는 완전한 정치 체제라기보다, 현실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이데아의 모상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국가》는 태생으로부터 이미 《법률》을 향하고 있었다. 이데아를 향한 모상이 스스로의 한계를 예비하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