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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 니체론/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기오 브란데스 지음, 김성균 옮김 / 까만양 / 2014년 9월
평점 :
당신이 채택한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매우 탁월한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내가 여태껏 읽어본 나에 관한 표현들 중 가장 명석한 것입니다. _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기오 브란데스, p.151)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책 뒤편에는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니체는 귀족적 급진주의 사상가였고 브란데스는 그런 니체의 예언가였다." 니체의 예언가로서 브란데스. 과연 그럴까? 책을 읽기 전 브란데스에게서 예언가적 면모, 선구적인 니체 연구가로서의 모습을 예상했지만, 본문에 나타난 브란데스는 마르크스 사상을 충실히 계승, 정리한 가치의 전달자 엥겔스가 아닌, 오히려 예수의 삶과 죽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탄생시킨 사도 바오로를 연상시킨다. 그의 글은 사건을 전달하지 않는다.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만을 남긴다.
내(브란데스)가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까닭은 그 표현이 나의 정치적 확신들을 매우 정확히 정의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니체)의 저작들에서 피력된 '사회주의나 아나키즘 같은 현상들에 대한 즉흥적이고 과격한 견해들'은 나를 조금 실망시켰습니다. _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기오 브란데스, p.151)
니체에게 '귀족적 급진주의'는 자기 인식이었고, 브란데스에게 그것은 정치적 도구였다. 같은 문장을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브란데스는 니체를 쇼펜하우어의 계승자로 읽었지만, 정작 니체는 자신을 쇼펜하우어와 단절자로 이해했다. 브란데스는 계보를 단순화했고, 니체는 계보를 파괴했다. 브란데스가 받아들인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보여준 바그너 숭배자로서의 니체였지, 《바그너의 경우》에서와 같은 문화비판자로서의 사상가가 아니었다. 이렇게 본다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만큼은 아닐지라도 브란데스는 니체의 사상을 온전히 받아들인 전도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브란데스는 스칸디나비아 자유주의를 뒷받침할 예언자로서 니체를 '간택'한 것이 아닐까. 다음에 나오는 브란데스의 니체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의심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니체는 이런 진정한 문화의 전달자들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유가치한 인물이다. 즉 니체는 자주독립해서 독립심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가치한 인물이고, 청년 니체에게 해방정신이 되어준 쇼펜하우어처럼, 타인들에게 해방정신이 되어줄 수 있는 정신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유가치한 인물이다. _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기오 브란데스, p.70)
자유주의자로서 브란데스는 우상을 파괴하는 니체의 망치를 건네받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폴론의 이성-디오니소스의 감성, 주인의 도덕-노예의 도덕이라는 예술, 역사에 걸친 매력적인 대립 구도를 놓을 수도 없었다. 그 결과 브란데스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나 최다수자의 행복'이라는 밀의 공리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니체의 사상 중 일부를 '귀족적 + 급진주의'로 받아들였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인정할 수 없었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들 중 《차라투스트라》를 최상위에 올렸다. 나는 물론 이런 니체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의 근간을 이루는 상상력은 창의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하고, 약간 단조롭게 느껴지는 어조는 '전형적인 상징들을 이용하는 고풍스러운 연출법'과 불가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_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기오 브란데스, p.115)
《차라투스트라》를 거부하는 순간, 니체는 ‘위험한 사상가’가 아니라 ‘사용 가능한 사상가’로 강등된다. 그리고, 브란데스는 거부했다.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를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니체의 전도사가 아닌, 니체의 편집자로서 브란데스다. 그에게 니체는 '필요'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니체의 정신적 붕괴를 바라보는 브란데스는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을 언급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의 정신적, 정치적 몰락을 안타까워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차이점도 있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에게 시대를 보았지만, 브란데스는 니체에게 기능만 보았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준다고 여겼던 이마저, 자신의 사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고독감 속에서 어떻게 니체는 '아모르파티'를 외칠 수 있었을까. 차라투스트라의 춤. 어쩌면 그 춤은 기쁨이 아니라, 운명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선택된 형식일지 모른다. 처용무처럼. 절망 끝에 부른 노래가 희망가일 수 있을까? 이는 다음 사유의 과제로 남겨둔다.
그런 천재가 단 몇 주일 만에 비할 데 없이 가련하고 무기력한 피조물로 전락해 가는 급변은, 더구나 그런 정신의 생명력이 거의 마지막으로 터뜨렸을 섬광이 영원히 소멸해 가는 급변은, 너무나 애처로워서 차마 직시하기 힘든 것이었다. _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기오 브란데스, p212)
글의 마지막은 다음으로 갈무리한다.
브란데스는 니체 사상을 이해했다. 다만, 그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브란데스는 니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니체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일이었다.
나의 친구 기오에게. 예전에 당신이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발견되기가 무척 쉬웠습니다. 지금 나를 망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 -1889년 1월 4일 토리노, 니체가 브란데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