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사람들에게 너를 얼마나 보여 주냐고?"... "상대에게 백 퍼센트 솔직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이희영, 165쪽)
형의 죽음 이후 형의 ID로 메타버스 세계로 진입한 주인공 선우 혁. 그가 친구 도운과 나눈 대화에 시선이 머문다. 가상의 세계에서 형의 신분으로 형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 반드시 가상세계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사회적 기대에 맞춰 보이는 자신과 남모를 고민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내면의 나. 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일까?
그리고, 이 내용은 얼마전 읽었던 《메소드》와 《커튼콜》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커튼콜》이 아역배우 출신 은비가 연극 주인공을 맡으며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라면, 《메소드》는 배우가 실제 그 캐릭터처럼 보이는 연기를 가능하게 한 연기 테크닉 - 메소드 -에 대해 다룬다. 《커튼콜》에서 주인공은 연기를 하기 위해 연기가 자신에게서 나와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을 비워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메소드》는 배우와 극중 인물의 간극을 없앨 것을 요구한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에서의 고민에 대한 《메소드》의 논리를 따른다면, ‘진정한 나’는 지워지고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만이 남는다. 《메소드》는 '진정한 나'가 아닌 역할에 따른 '페르소나'를 강조할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청소년들은 ‘버틀러’가 겪었던 것처럼, 역할에 자신을 소진시키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지워진 자아’의 문제는 영화 《여고괴담》에서 '억압'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제는 학교 괴담의 고전이 되버린 이 영화와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구조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학교에서 자살하고 훗날 귀신이 된 여학생, 시간이 흘러 자신의 모교로 발령받은 친구의 구도는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에서 죽은 형을 대신해 형의 ID로 접속한 동생, 이제는 선생님이 된 형의 친구의 구도로 살아난다. 이러한 구도가 같은 결론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여고괴담》이 억압받는 자의 귀환을 말한다면,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죽은 자의 애도를 말한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귀신 대신 가상세계로 들어간 현실 인물의 차이는, 폭로와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갖는다. 이처럼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에서 보이는 물음과 구도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과 깊은 심적 갈등이 1999년 《여고괴담》 이후에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는 은근한 폭로가 아닐까. 이에 대해 우리 기성세대는 《커튼콜》에서 은비가 스스로 간극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