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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파괴, 접속 4 - 전쟁과 정보 혁명 ㅣ 케임브리지 세계사 18
존 로버트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평점 :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모두 지역 갈등에서 시작해 더 넓은 지역 또는 국제 분쟁으로 이어졌다. 지역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민족 정체성과 국가의 이익이 강조되면서, 기존의 유럽 평화 질서를 지향하는 광범위한 공통 인식은 약화되었고, 결과적으로 강대국 중심 체제가 형성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73
지역에서 세계로. 케임브리지 세계사의 마지막 <생산, 파괴, 접속 4>에서 우리는 지역(local)과 세계(global)의 진정한 연결을 확인하게 된다. 이전까지 세계사에서 지역 간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에서의 접속'과 '세계 안에서의 접속'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그 양상을 달리한다. 이는 지역에서의 접속이 체제의 안정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선택이라면, 세계 안에서의 접속은 체제의 사활마저 걸어야 하는 '지정학적 요인'을 고려해야만 하는 실존적 필연성을 띠게 되었으며,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사'를 함께 써가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냉전은 단순히 강대국과 동맹국 간의 갈등을 넘어, 국제 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틀로 자리 잡았다. 적어도 초강대국들에 있어 양극체제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와 같이 냉전의 주변부에 놓인 지역에서는 불안정과 폭력이 만연했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125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루어진 중요한 사상적, 과학적 변화 때문이다. 18세기 시민혁명으로부터 확산된 민족주의 사상은 근대시민국가, 제국주의 국가의 토대를 형성했으며,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군사적 우위를 안겨다 주었고, 자본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교통과 통신 인프라는 이러한 양태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인류가 말을 길들인 이후, 교통통신 분야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는 19세기였다. 당시에는 두 가지 기술 혁신, 즉 증기기관(steam engine)과 전기(electricity)의 발명 덕분이었다.(p.260)... 19세기 후반, 기술과 조직의 혁신이 교통과 통신 분야에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 중 가장 먼저 나타난 혁신은 전기(electricity)의 활용이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268
제국주의 시대 중심지인 본국에 대해 원료 공급지, 상품 소비지, 제품 판매지로서 기능한 식민지를 연결한 것은 자본이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자본의 확대 재생산은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을 요구했으며, 이는 20세기에 결국 에너지 문제를 낳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에너지 이슈는 새롭게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안에서 패권 문제로 연결된다. 석탄-석유-핵(核)으로 주인공이 바뀌면서 이를 둘러싼 역학관계의 변화는 1950년대 이후의 지정학적 분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傍證)한다.
기술 혁명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여기서 다룰 두 가지 기술은 분명하게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갔다. 교통 기술의 발전은 정체된 반면, 통신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왜 발전이 멈춰 버렸을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에너지 때문이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285
이 같은 변화는 21세기에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비록 책에서는 다뤄지지 않지만, 책을 잠시 덮어두고 생각해보자. 20세기까지 포디즘(Fordism)의 대량 생산 논리가 통용되었다면, 21세기에는 조금 달라진 듯하다. 20세기가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생산'하는 파괴적 혁신(핵,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에너지를 미세하게 제어하는 '지능적 최적화'의 시대로 변화했다. AI 시대를 맞아 더 많은 전력 자원이 요구되는 가운데, 저전력 반도체나 우주 데이터 센터 건설 등의 주제가 이슈가 되는 것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환에 기반한 것은 아닐까.
<생산, 파괴, 접속 4>를 통해 이전 세기의 이성(reason)에 기반한 계몽주의에 영향받은 민족주의, 민족주의가 낳은 근대 시민 국가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한편,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의 결합은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으며, 이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는 군사력에 기반한 제국주의를 통해 세계화를 만들었다. 비록,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소수의 제국은 여러 나라로 분화되었지만, 에너지와 '자유'와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다툼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단면도 확인할 수 있다.
신으로부터의 자유, 국가로부터의 자유, 사회로부터의 자유... 근대 이후의 시대는 끊임없는 '-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를 추구해 온 시대였다. 그 결과 가족마저도 분화되어 핵가족에서 1인 가구로 옮겨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구속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육체는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자유)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접속'되어 있는 현대인의 분열적 상황. 이는 더 이상 분화될 수 없는 자유가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구조 안에서 표출된 뒤틀린 모습이 아닐까.
자동차에 대한 인류의 열정은 20세기 초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자동차는 단순히 편리한 교통수단이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자유'라는 이상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408
이로써 전 18권에 걸친 케임브리지 세계사의 내용은 마무리된다. 이후의 역사는 이제 읽는 부분이 아니라,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현재이며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