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파괴, 접속 3 - 가족의 변화와 문화의 네트워크 케임브리지 세계사 17
존 로버트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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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지만, 1750년만 하더라도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의 5퍼센트에 미치지 못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도시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우리는 도시인이 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87


 독일의 <코젤렉 개념어 사전>은 한 단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를 담은 책이다. 자유, 평등, 노동 등 수많은 개념어들의 변천 과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거대한 분기점을 피해간 단어들은 없었다. '근대화'라는 이름의 변화. 근대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단절은 전통 사회와 근대 사회를 구분 지었으며, 공간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사는 이들이 느끼는 이질감 이상의 느낌을 선조와 후손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런 면에서 '근대화'라는 커다란 변화의 에너지가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근대화라는 변화 자체만으로 오늘날 현대 사회가 이룩되었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근대화에 있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생산, 파괴, 접속 3>의 내용은 이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민족주의(nationalism)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가 근대의 산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양자는 모두 전근대에 존재하던 전통과 정체성이 근대를 거치면서 변화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민족주의와 종교는 모두 전근대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때로는 매우 심오한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족성(ethnicity), 언어, 종교 등에서 나타나는 원초적 민족주의(proto-nationalism)는 근대 민족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310


 새로운 사회질서가 필요했던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고전 문헌에서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했다. 도시국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와, 민족국가의 경쟁이 치열했던 당시의 서구 사회가, 그들이 보기에는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고대 사회에서 운동 경기가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근대 세계에서도 운동 경기를 통해 비슷한 외교적 기능을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421


 근대화를 통한 커다란 변화는 사회 저변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구체적인 생활 면에서는 도시화라는 극단적인 변화를 선택한 반면, 사상적인 면으로는 전통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변용시켜 과거와의 연결을 선택했다. 공동체적 생활에서 벗어나 개인 생활을 추구하되, 정신적으로는 종교와 전통의 권위를 따르는 부조화가 사회문화 전반에 충돌하면서 생겨난 거대한 상흔, 그것이 현대 사회의 비극, 문제점이 아닐까. 이러한 충돌과 공존이 유지되는 제도가 '가족(家族)'이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도 큰 틀은 유지하고 있는 전근대와 근대의 긴장된 공존이 일어나는 곳. 그곳에서 현대 사회 문제의 뿌리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가족 내부의 성 역할, 자녀 출산과 양육의 목적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했다. 특히 도시화를 비롯한 경제 구조 변화는 가족의 변화에 중요한 원인이었다. 제국주의와 세계화 역시 변화를 가속화한 요인이었다. 동시에 가족은 여전히 개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전통적인 문화 정체성의 일부로 유지되는 면도 강하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127


 <생산, 파괴, 접속 3>은 생활사이면서 미시사적인 면이 많이 보이는 '가족의 변화와 문화의 네트워크'를 다룬다. 서로 다른 주제의 소논문들을 가로지르며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결국 단절된 도시와 지속되는 가족, 그리고 변이된 전통이 한데 엉켜 만들어낸 현대인의 초상이다. 이번 독서에서는 이 복잡한 얽힘 속에 담긴 거시사의 도도한 흐름을 읽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라 자평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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