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위험한 생각
대니얼 C.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윈의 위험한 아이디어는 육체를 입은 환원주의이며, 하나의 웅장한 시각으로 모든 것에 대한 것들을 설명하고 통일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환원주의이다. 그의 생각을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그 생각에 내포된 알고리즘적 과정이라는 아이디어인데, 알고리즘 과정은 기질 중립성이라는 특징을 지니므로,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다윈의 생각을 적용해볼 수 있다. _ <다윈의 위험한 생각>, p.155 


 저자 대니얼 C. 데닛이 말한 다윈의 위험한 아이디어, 생각은 환원주의다. 모든 것을 다 녹이는 만능산(Universal Acid). A, C, G, T로 기술된 가능한 모든 유전체(genome)의 집합소인 '멘델의 도서관(Library of Mendel)'에서 크레인(Crane)을 통해 하나씩 분명하게 쌓아올리는 알고리즘 작업. 그리스 비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같은 극적 장치가 아닌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루하지만 끊임없는 작업이 진화의 본질이며 전부라는 것을 저자는 본문을 통해 강조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 같은 갈고리 대신 묵묵한 노인의 발걸음(알고리즘)을 통해 지형은 바뀌어왔다. 데닛에게 진화란 단 한 번의 요행(Skyhook)에 기대는 도박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내어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꾸준한 실천'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주장을 위해 저자는 수많은 반론들을 논파해간다. 그 치열한 작업의 일부가 담겨 있음으로 해서 이 책의 분량은 9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벽돌책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이로 인해 독자들은 '다윈의 알고리즘'이라는 만능산을 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능산을 담을 수 있었던 그릇은 데이비드 흄부터 스티브 J. 굴드에 이르기까지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데닛이 말하는 진화의 알고리즘은 매번 최적화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긴 시간의 축 위에서 결국은 한 단계 높은 복잡성으로 이끈다. 이러한 우연이 결국은 필연에 이르는 것이다.


 저자가 다윈의 알고리즘을 만능산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창조론에 대한 논파를 의미하지 않는다. 켄터베리의 안셀무스가 신(神) 존재 증명을 위해 내걸었던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상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은 물론, 진화를 위한 최소한의 가정 마저도 대상이다. 현실의 단단한 기반에서 차례로 딛고 올라가지 않은 아주 작은 비약은 여지없이 '스카이후크'가 되어 녹아버리고 만다.

 

 스카이후크는 있으면 매우 좋은 것, 어려운 상황에서 다루기 힘든 대상들을 멋지게 끌어올릴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건설 프로젝트를 가속시킬 수 있는 경이로운 것이니까.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_ <다윈의 위험한 생각>, p.141 


 모든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귀속시키는 환원주의는 우리를 회의주의로 내몰기 쉽다. 저자의 치열한 논파의 끝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안겨줄 수 있다. 모든 것이 우연적 사실에 의한 결과라면, 우리의 가치, 문화 등에 대해 우리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유전자의 작용에 대해 개체, 사회는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저자는 '역설계'의 개념을 통해 결코 우리의 가치가 무의미하지 않음을 말한다. 


  VCR의 물리학을 이해해야만 하는 사람은 VCR 설계자들뿐이다. 그들은 내가 물리적 태도라 부르는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화질을 향상시키거나 테이프의 마모나 찢어짐을 줄이거나 제품의 전기 소모를 줄이려면 설계 개정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역설계를 할 때면, 그들은 물리적 태도뿐 아니라 내가 지향적 태도라 부르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타사의 설계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_ <다윈의 위험한 생각>, p.400 


 우리와 주위를 둘러싼 산물들은 멘델의 도서관에서 쌓아 올린 알고리즘 작업의 결과물이다. 생물학적 유전자들은 문화적 밈(meme)으로 연결되어 이 세계를 만들었고 만든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과 의미 부여라는 역설계를 통해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라는 저자의 따뜻한 결론을 통해 우리는 작은 위안을 받게 된다. 다윈의 위험한 생각은 분명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만능산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녹을 수 있는 재료들을 매순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녹고 녹이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창조(creation)'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 대한 큰 틀을 요약하는 것으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다윈에 따르면 진화는 알고리즘적 과정이다. 진화를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진화생물학 안에서의 주도권 싸움들 가운데 하나는 알고리즘으로 다루는 방식을 끊임없이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이는 진영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모종의 여러 이유들 때문에 이에 저항하는 진영 간의 줄다리기이다. - P115

스카이후크는 있으면 매우 좋은 것, 어려운 상황에서 다루기 힘든 대상들을 멋지게 끌어올릴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건설 프로젝트를 가속시킬 수 있는 경이로운 것이니까.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p.141)... 그러나 크레인이 있다. 크레인은 우리 상상 속의 스카이후크가 할 수 있을 일, 즉 들어올림 작업을 할 수 있고, 선결문제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직하게 그 작업을 수행한다. 크레인들은 이미 제작되어 수중에 있는 부품들로 설계되어야 하고 또 그 부품들로만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땅의 단단한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 P142

나는 그 변이를 ‘멘델의 도서관 Library of Mendel‘이라 부를 것이다. 이 도서관에는 "가능한 모든 유전체 genome", 즉 DNA 서열이 보관되어 있다...‘멘델의 도서관‘은 3,000권 분량의 모든 책들에 기술된 모든 DNA 문자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책들은 전적으로 그 네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이는 그 어떤 진지한 이론적 목적과도 부합하는 "가능한" 유전체들을 충분히 포착할 것이다 - P202

문화를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지만, 언어는 먼저 자신의 힘으로 진화해야만 한다.언어가 다 준비되면 그것이 얼마나 좋을지는 언어가 준비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우리는 협력도, 그리고 인간의 지능도 전제조건으로 삼을 수 없다. 전통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은 처음의 복제자가 그랬던 것처럼, 전제된 그 무엇도 없이, 맨 처음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들이다. - P579

우리는 이제 다윈주의적 알고리즘이 무엇인지를 다윈이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대담한 역설계는 수십억 년 전 이 행성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경쟁자들의 주장을 확신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 지점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과거의 우리는 생명과 의식의 "기적들"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것들은 그때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으로 밝혀졌다. - P8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