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유망한 산업과 기업을 발굴해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기술과 산업의 장기 전망과 추세를 알아채는 고도로 숙련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반면 부동산 대출은 쉽고 빠르다. 담보만 잡으면즉각적으로 이자수익이 꽂히고, 당기순이익이 급증한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와 ‘부동산 도박‘ 에 빠진 사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몫으로 전가됐다.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집을 살 수 없게 되었고, 중소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이다 문을 닫는다. - P13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부동산, 특히 주택을 매개로 움직인다. 주택을 담보로 삼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은행의 가장 주요하고 든든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원리금을 상환받지 못하면 그주택을 처분해 빌려준 돈을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 주담대는 꾸준한 이자수익 보장뿐 아니라 회수 가능성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우량 자산이다.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약 1927조원) 가운데 60% 정도인 1123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 P15
‘금융 배제‘는 ‘금융 독점‘과 동전의 양면이다. 경제학 교과서 관점에 따르면 여유자금을 가진 돈 많은 쪽이 자금을 빌려주고, 돈 없는 쪽은 빌린다.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주로 부동산을 보유한 부자들이 많이 빌리고 그 돈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해서 가격을 더 올린다. 가진 자들이 돈도 많이 빌리는 현상을 ‘금융 독점‘이라고 부른다. 소득과 자산이 적은 대다수 청년들은 은행에 내밀 명함도 없다. - P16
당시 금융기관들은 외국계 컨설팅회사들에게 자문했는데, ‘한국 조선업엔 전망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포기 결정을내렸다. 결국 조선업은 붕괴 직전으로 치달았다.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금융기관들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금융기관들이 조선산업의 사업성을 평가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컨설팅 회사들 역시 재무나 구조조정의 전문가일 뿐 산업은 몰랐다. 당시 20만여 명에 달하던 조선업 부문의인력이 이 사태 이후 2년 사이 8만명으로 줄었다. - P19
집단소송은 원칙적으로소송 참여자들뿐 아니라 같은 피해를 입은 모든 당사자에게 확정판결 효력이 미치지만, 공동 손해배상 소송은 소송 참여자에게만 효력이 미친다. 지금의 대규모공동소송에 쿠팡이 방관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P25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지역마다 의과대학을 세워달라는 목소리는엄청 높은데, 제가 진주 경상대병원부터 제주대병원까지 10여 년 지역 의료에 있어보니, 정작 지역의 거점 의료기관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이 그리 높지 않다. 같은실수를 해도 빅5 병원은 괜찮고, 지역 대학병원은 욕을 먹는다.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지역 병원을 지켜보고 이용해주셔야 나와 내 가족이 아플 때 믿고 갈 수 있는 병원을 곁에 둘 수 있다. - P35
윤석열 정부 시절의 방통위에 비해 의사결정의 효력은 좀 더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의제를 통해 의도했던 바가 이번에도 잘 실현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합의제는 그 합의를 수행할 주체 혹은 합의의 공간을 만드는주체로서의 정치, 그 합의의 장에 들어갈 자격과 수준을 지닌 전문가, 그리고 그곳에서 결의된 합의를 합의가 아닌 의사결정보다 더 나은 것으로 받아들여줄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작동하기 어렵다. - P40
공적연금제도가 세계 최초로 시작된 건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 때인 1889년이다. 획기적 정책이었지만 이것이 노동자의 복리를 위한 정책으로 평가받지는않는다.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이 5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연금 수급 연령은 70세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의 연금제도는 체제에 위협이 되던 사회주의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으로 진화했다. - P52
AI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공일반지능은 좁은 의미의 정보처리과정으로 쪼그라들거나 일반지능의 많은 요소가 생략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략과 의도적 변형 덕분에 AI는 초지능에 가까운 지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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