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웹 - 세계화의 세계사 히스토리아 문디 8
윌리엄 맥닐.존 맥닐 지음, 유정희.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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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술과 재화와 태도가 각 문명의 중심부에서 사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지역별 문화적 성향이 확립되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곳에서 사회적/환경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한 지역의 지배층이 도시적인 습관과 사치품을 손에 넣기 위해 문명화 방식을 모방하기로 결정하게 되면, 그들은 고유한 전통과 권리, 관심을 포기해야 했다. _ <휴먼 웹>, p116


 상호작용과 교환의 세계사. <휴먼 웹>의 영어 원제 <The Human Web : A Bird's -Eye View of World History>에서 표현되듯이 새의 시선(A Bird's -Eye View)에서 지상에 펼쳐진 거미줄(Web)을 내려다보는 관계의 세계사가 이 책의 주제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존재하던 인류 공동체는 상호교류를 통해 긴밀하게 다른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상호 교류를 강화하며 별도의 역사가 아닌 공동의 역사, 세계질서를 확산시켜왔다. 연결되는 관계는 '전문화'된 인간을 요구했고, 전문화의 결과 개인의 생존 능력은 떨어지는 대신, 사회의 능력은 점차 증가되었다. 사회라는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그것은 결국 불안정성의 원인이 되었다. 


 이 책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흐름은 '관계의 강화', '연결망의 확산'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서  문명의 중심지와 이를 모방하려는 주변지들의 관계는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중심지-주변지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시대가 흐를수록 중심지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어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내부적 변화는 보다 극적으로 확인된다. 


 1000년과 1500년 사이에 올드월드 웹의 중심지에서 일어난 변화는 나머지 세계에서 발생한 모든 변화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500년 동안 교류가 급증하고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생산량이 증가하고 시장가격과 정치적 명령에 따라 인간의 노력이 효율적으로 동원된 결과, 올드월드 웹의 불안정성은 점차 증가했다. _ <휴먼 웹>, p215


 내부의 결핍을 외부와 교류를 통해 채우고자 하는 요구는 연결망을 확산시켰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를 강화시켰다. 문명의 차이는 연결망의 흐름을 결정지었으며, 원재료와 상품, 화폐와 물자의 교류는 확산되었지만, 교류의 불평등성도 함께 증가되면서 세계화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음을 <휴먼 웹>은 보여준다.


 1450년 이후의 3세기 반 동안 세계의 개별 웹들이 융합되었다. 게다가 어느 웹에도 속해 있지 않던 여러 지역도 웹 안에 편입되었다. 1800년에 이르자 9억에 달하는 세계인구 가운데 월드와이드 웹에 통합되지 않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p296)... 1500년과 1800년 사이에는 그 기능이 대서양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세계의 웹들은 월드와이드 웹에 통합되었으나, 사람, 물자, 사상, 감염증이 이동하는 속도는 수메르 주변에 처음으로 메트로폴리탄 웹이 형성되었을 때보다 약간 빨라졌을 뿐이다. _ <휴먼 웹>, p298


 <휴먼 웹>은 세계화의 흐름이 18세기 이후 보다 거세졌음을 설명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 흐름 속에서 예전에는 지역별 과제가 세계화를 통해 전 인류의 과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도시화, 기후 문제와 같은 인류 공통의 문제에 대해 유례없이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한 인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750년과 1914년 사이에 타이트해진 웹은 인구폭발, 대의정치의 형식, 각국의 국민적 정체성, 산업화를 널리 확산시켰다. 이 모든 것은 불균등하게 퍼져 나가, 각 사회 내에 그리고 다른 사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을 조성했다. 낡은 속박은 타파되고 구제도는 붕괴되었으나, 그것을 대체한 것은 새로운 안정이 아니라 혼란과 불확실성이었다. 세계는 아직도 18세기에 시작된 대격변의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_ <휴먼 웹>, p374


 인류는 문명(文明)을 매개로 상호 연결망을 강화하며, 보편성을 확대시켜왔다. 그 결과 근대화로 대표되는 보편문명을 얻는 대신, 전통문화로 나타나는 문명의 개별성을 잃었다. 이제는 '인류 문명'이라는 연환계에 묶인 인류공동체는 문명에 닥친 보편과제를 잘 협력해서 해결할 수 있을까?  긴밀한 연결을 통해 어느 때보다 인류애는 높아졌으나, 그 이상의 협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잘 풀어내지 못한다면, 인류는 그대로 대멸종의 시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제도가 과학/기술의 발달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부조화, 세계화 과정에서 쌓여온 불안정성을 안고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우리가 연결된 인류의 운명을 한 단계 높은 도약으로 이어갈지 아니면,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며 막을 내릴지는 현재 우리에게 달려있음을 생각하며 독서를 갈무리한다...


 1870년과 1914년 사이에 진행된 급속한 세계화가 불평등을 낳자, 분개한 사람들은 내셔널리즘과 전쟁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1914~1918년의 전쟁은 일부에게는 내셔널리즘과 전쟁을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일부에게는 그것을 더욱 신봉하는 동기가 되었다.(p444)... 도시화와 인구성장은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사회변화였다. 대부분의 문화적 도전과 변화는 도시에서 기원했지만 인간의 이데올로기, 제도, 관습은 기본적으로 농촌이라는 환경에서 형성되었다. _ <휴먼 웹>,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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