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위대한 생각 시리즈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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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아름다운 책들이 갖는 위대하고 뛰어난 특성 중 하나로 작가에게는 '결론'이고 독자에게는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작가의 지혜가 끝날 때 우리의 지혜가 시작됨을 느끼고, 작가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를 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에게 욕구를 불어넣는 것이다.(p33) ... 작가는 말하는 순간 모습을 감춘다. 바로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한계이다. 시작임에 불과한 것을 마치 규범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독서에 지나치게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삶의 도입부에 있다. 독서는 그러한 삶에 안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_ <독서에 관하여>, p35


 작가의 끝 그리고 독자의 시작. <독서에 관하여>안에서 프루스트는 작가와 독자의 단절을 말한다. 작가는 책을 '쓴다'. 독서가 이루어지는 동안 독자들은 이미 떠난 작가가 남긴 자취를 따라 자신만의 여행을 간다. 작가와는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독자의 머리 안에서 작가가 남긴 흔적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조립될 것이고, 독자 자신은 DIY로 조합되고 해석된 의미를 통해 책을 '읽는다'. '쓴다-읽는다'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타인의 구미에 맞추어 일할 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일할 때 그 결과는 반드시 누군가의 공감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한 무엇이 아무에게도 같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독특하지 않고, 천만다행으로 삶에서 그토록 큰 기쁨을 주는 호감과 이해심으로 우리의 개인성은 보편적인 틀 속에 짜여 있다. _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 p64


 보편성과 개별성. 많은 경우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공감을 받는 보편성을 갖는다고 여긴다. 자신과 남들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들은 잘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반응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최소한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갖는 이들에게만이라도 이해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기대는 그렇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작가와 같은 사회적 배경에 있더라도, 드러나지 않은 저마다의 개인감정을 통해 읽혀진 작품에 대한 반응은 마치 무회전 공처럼 예측하기 힘들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예측 불가능한 틈. 어쩌면 이곳이 창조성 발현 공간은 아닐까?


 창조적인 행위는 그것에 관한 어떤 법칙을 알고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신비한 힘, 그것을 밝혀낸다고 해서 더 강해지지는 않는 그 어떤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_ <샤르댕과 렘브란트>, p64


 작품이 온전하게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쓰고 읽는', '그리고 보는', '연주하고 듣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예술의 창조성은 과정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과정 안에 숨겨진 힘.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의. 이처럼 작가와 독자라는 둘 사이의 '신비한 힘'에 의해 이루어진 창조물(작품)은 그것을 낳은 작가와 구별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작가와 작품은 구별되어야 하며, 곧 프루스트 예술론과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독서에 관하여>에서 드러난 프루스트의 예술론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화자가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독자나 관객을 작가의 의도를 관철시켜야 하는 대상이 아닌, 작가가 바라본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가진 '제2의 창작자'로 받아들이고  독자의 몫을 남겨야 한다는 프루스트의 예술론을 알고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다른 의미에서 독자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는 아닐까 라는 작은 물음과 함께 책을 덮는다...


 예술작품을 통해 민중에게 교훈을 주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을 추구하려 했던 러스킨의 미학은 예술가의 정치적이며 사회참여적인 자세를 유도하기에 이른다. 이는 다시 말하면 모든 훌륭한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에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논리로까지 전개될 수 있다(p225)... 프루스트에게 있어 예술가의 임무는 숨어 있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글이건 그림이건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여 예술작품을 승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기준은 오로지 진리의 추구인 것이다. _ <독서에 관하여>, 역자해설 p227

고전작품은 동시대 작품들과 달리 그것을 창조한 정신이 아름다움만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다. 고전작품들은 그보다 더 감동적인 다른 것을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그 작품을 구성하는 재질, 그것이 쓰인 언어이다. 그 재질은 삶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 P53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법이다. 그들이 이제껏 우리에게만 기쁨을 주던 것들의 엄숙한 이름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채 부를 때, 그것이 현실에 우리보다 더 종속된 이들에 의해 이같이 다루어질 때 우리는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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