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황혼 대우고전총서 39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각은 도무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감각의 증언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비로소 감각에 거짓말을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 통일성이라는 거짓말, 사물성, 실체, 영속성이라는 거짓말을....... '이성' 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감각의 증언을 왜곡하게 하는 원인이다. 감각이 생성, 소멸, 변천을 보여주는 한, 그것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_ <우상의 황혼>, p16/111 


 쇠망치(Hammer)는 말한다. 니체의 쇠망치는 서양정신사의 우상들을 내리친다. 그리고 산산히 조각내어 부순다. 그가 거부하는 것은 소크라테스-플라톤에 의해 구현된 변증법과 산파술에 의해 세워진 참된 세계(Idea)라는 이상향이며, 기독교가 강조하는 천국이다. 감각은 생성, 소멸, 변천을 보여주지만, 이성은 이 변화하는 세계 뒤에 영속적이고 변치 않는 진리(형상/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곧 실체, 사물성, 통일성 등의 개념으로 굳어져 현실을 왜곡한다.


 이성에 의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울어진 객관적 세계. 그것은 주역 63번째 괘(卦)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세상이기도 하다. 니체는 그 세상에 쇠망치를 휘둘러 이러한 완성을 산산히 조각낸다. 대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미결 상태로 남아있는 64번째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의 세계를 열어젖히고자 한다. 이성 대신 감성으로, 아폴론 대신 디오니소스로, 선악 대신 '그 너머로'. 


  니체는 현실-이상(참된)세계의 구조를 거부한다. 마치 '수학적 체계가 충분히 복잡하다면 자신이 모순이 없다는 사실을 그 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괴델의 불완전성(不完全性)' 정리처럼. '이성'이 세운 삶과 세계의 체계(도덕, 종교)는 그 체계 안에서는 삶의 가치를 최종적으로 평가하거나 그 참됨을 증명할 수 없는 불완전성을 내포한다. 니체는 이성 체계 안에서 침묵하는 대신, '자기극복'을 통해 그 체제를 통째로 뛰어넘는(超越) 길을 선택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도 있겠지만, 니체는 그 체제를 뛰어넘는 것을 선택한다. 체제 뿐 아니라 체제에 속한 자신까지 뛰어넘는 '자기극복'을 통해 그는 한 단계 도약하며, 위버멘쉬(Ubermensch)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통해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존재 전체를 '영원히 다시 반복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다. 이 영원회귀(永遠回歸)의 수레바퀴 앞에서 그는 해탈(解脫) 대신 고통까지도 웃으며 긍정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공포와 연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해석하는 것처럼 공포와 연민을 격렬하게 방출함으로써 그 위험한 정념으로부터 정화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포와 연민을 초월하여 생성의 영원한 기쁨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_  파괴에 대한 기쁨까지도 포함하는 기쁨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_ <우상의 황혼>, p60/111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정화)가 '위험한 정념으로부터 정화(Purification)'되는 것임에 반해, 니체는 공포와 연민을 초월하여 '생성의 영원한 기쁨 자체로 존재'하고자 한다. 이는 순수 이상향을 거부하고 현실에 대한 전면적인 긍정으로 나아가는 태도이다. 이처럼 <우상의 황혼>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니체 사상의 주요 얼개와 강력한 메시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안내서라 여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