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이 어느 날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리의 다른 아가씨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쉽사리 흥분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가씨들의 무리를보았을 때 느꼈던 혼돈스런 마음 상태처럼 아직도 어떤 때는 이 아가씨, 어떤 때는 저 아가씨 하는식으로 끊임없이 대상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아가씨들 모두를 무리지어 생각하고,
아가씨들 스스로가 그렇게 의식하고 처신하듯 나 자신도 그들을 그들만의 동떨어진 생명체로여겼다. 내가 마치, 종교인들 사이에 섞여 있긴 하지만 세련된 태도 때문에 표가 나지 않는 무신론자이거나 야만인들 사이에 버젓이 끼어든 조심스런 기독교도처럼 아가씨들 틈에 비집고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 속에서 건강과무심함, 관능, 잔인함, 반지성(性), 기쁨이 넘치는 젊음의 활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듯이 보였다. - P12

아가씨들이 함께 모여 있는 걸 바라다보면,
서로 조금씩 다른 생김생김이 마치 하늘에 사는 어느 정원사가 장미꽃 사이를 누비며 다닐 수 있도록 환한 빛을 부어 만든 오솔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질 무렵, 아가씨들 얼굴이 붉은 노을에 물들 때에는 누가 누군지 거의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아직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기다릴 짬도 없이 아가씨의 얼굴이 영원히 고정된 형태로 굳어지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후론 그 얼굴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더욱더 젊은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가씨들의 얼굴을 비추는 아침 햇살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가지고 온 음식을 다 먹고 나면 놀이를 했는데 나는 아가씨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환희와 함께 들었다. 마치 어린아이에겐 어른에게는 없는 분비샘이 있어서 우유를 마셔도 별 탈이 없듯이, 이 앳된 아가씨들의 목소리에는 성숙한 여인에게는없는 특별한 음조가 담겨 있었다.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