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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시대 1 - 기본 모델과 거대 지역 단위 ㅣ 케임브리지 세계사 11
제리 벤틀리.산자이 수브라마니암.메리 위스너-행크스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4년 11월
평점 :
세계 교류의 네트워크가 재편되며 정주 세력이 새로운 네트워크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했으며 유목 세력은 그들과의 경쟁에서 희생양이 되었다... 유목 국가에 비해 정주 국가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은 단지 상거래 네트워크의 확장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주 국가들은 외부 세계의 정보 네트워크에 접근할 기회가 더 많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척할 역량도 더 컸다. 정주 국가는 구조적으로 개인을 넘어서는 관료 체제를 구축했다. 이와 달리 스텝의 유목 국가는 개인에 중점을 두는 세습 체제에 머물러 있었다. _ <케임브리지 세계사11 : 세계화의 시대1>, p318
<케임브리지 세계사 11 : 세계화의 시대1> 은 1400년부터 1800년까지를 '세계화의 시대'로 규정하고, 상호의존성이 심화되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살피고 있다. 본문에서 저자들은 '연결'과 '비교'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통해 각 문명권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탐색한다.
책의 핵심 키워드인 '연결'은 신대륙과 구대륙의 만남에서, '비교'는 구대륙 내 유목 세력과 농경 세력의 경쟁에서 그 의미가 명확히 드러난다. '연결'의 결과는 영화 <1492 콜럼버스>의 장중한 주제가 'Conquest of Paradise(낙원의 정복)'였던 것과는 정반대로, 파멸적인 비극으로 귀결되었고, 농경 세력이 유목 세력을 압도해나간 역사를 보여주는 '비교'의 과정은 마치 창세기에서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신화적 사건이 역사 속에서 재현되는 듯한 씁쓸함을 남긴다.
전염병으로 인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 급감, 무자비한 자원수탈과 이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는 결국 이 시대의 '세계화'란 한쪽의 부와 발전을 위해 다른 한쪽의 희생을 담보로 한 '불균등한 연결'이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이 시기는 농경에 기반한 정주 제국이 유목 제국에 대한 기술적, 시스템적 우위를 점하며 그 격차를 벌리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교류의 중심이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관료제라는 시스템을 통해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한 정주 국가는 중앙집권적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반면, 뛰어난 리더의 역량에 의존하던 유목 국가는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며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 세계사11 : 세계화의 시대1>는 이러한 불균등한 '연결'과 변화에 대한 시스템의 '비교'를 통해 1400~1800 CE의 세계사를 바라보는 기본 모델을 제시한다. 또한 유럽 중심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던 중국과 강력한 이슬람 제국들의 역동성을 함께 조명하고, 젠더 문제와 피지배층의 저항까지 아우르며 독자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세계화의 모순과 그 뿌리를 성찰하게 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이 다른 세계사 책이 갖지 못한 이 책만의 관점으로 정리하며 글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