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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민주정의 특징인 과도한 자유가 결국 민주정을 전복시키고 참주정의 필요성을 낳지 않겠나? _ 플라톤, <국가> 제8권 中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역설적으로 소수의 지배를 강화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민주주의 제도의 설계와 운영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플라톤 이래의 수많은 정치 사상가들은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주의의 우수성은 인정하면서도 최선의 정체(政體)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수에 의한 폭력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적 혼란이 결국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플라톤이 지적했다면,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신생국의 대의민주주의에서 법치주의와 사법권력 (Rule of Law and Judicial Power)이 다수의 횡포를 방지할 제도로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전통적인 정치사상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유지는 '다수에 대한 견제'에 달려 있다고 보았고,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은 이와 함께 이루어져 왔다.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힘을 제한하는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지배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_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p93/211
하지만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이러한 통념과는 달리 다수에 대한 지나친 견제가 소수에 의한 지배라는 다른 형태의 참주정으로의 이행을 보다 자세하게 다룬다. 선거인단과 게리맨더링, 보통선거와 필리버스터, 대법원 종신제와 어려운 헌법 수정의 문제 등 소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제도적 장벽들이 소수의 '약자'가 아닌 '엘리트 특권층'을 보호하고 있는 현실을 저자들은 예리하게 비판한다. 유권자들에 의해 패배한 후보자가 선거인단에 의해 승자가 되는 선거인단, 자신의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개리멘더링, 선출되지 않은 인물에 의한 사법권행사, 헌법 개정을 위한 까다로운 조건은 제도적 약자를 보호하는 대신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제도로 유지 존속케 하는 여러 기둥이 된다.
여기에 더해, 엘리트 특권층이 세습화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반(反)지성주의', 즉 허위 정보나 감성적인 주장을 통해 대중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종하는 방식을 통해 다수를 분열시킨다면 이러한 악순환은 제도의 보호 아래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전횡. 이들 모두를 막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의 정착이 필요하지만, 만들어진 제도의 안전성과 보완성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없다면 이 또한 한계가 있음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당대의 현실을 잘 반영한 법 체계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시대상을 담지 못하게 되었을 때, 현실 속의 도그마(dogma)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아닌 불가침의 종교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다룬 이 책은, 결국 민주주의 제도가 단순히 다수결 원칙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소수의 권리 보호라는 명분 아래 소수의 특권층이 다수를 지배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경계해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는 제6공화국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국제적으로는 분단 체제 아래에서 성립한 87년 체제는 21세기 새로운 변화의 시대 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한계를 갖는다. 이 같은 시대의 한계를 절감하는 우리에게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여러 시사점을 안겨주는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