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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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두 가지 삶이 있었다. 그 삶은 그의 지인이나 친구들의 삶과 쏙 닮은, 조건부 진실과 조건부 기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비밀스럽게 흘러갔다. 몇몇 낯선 우연들이 겹치다보니, 말 그대로 우연이겠지만, 그에게 중요하고 흥미로우며 꼭 필요한 모든 것, 그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할 수 있는 모든 것, 그의 삶의 알맹이를 이루는 모든 것은 다른 이들 모르게 이루어졌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 덮어쓰고 있는 그의 거짓과 껍데기, 가령 은행 업무나 클럽에서의 논쟁, '저급한 인종'이라는 말, 아내와 함께 기념일 파티에 가는 일만이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났다. _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p51

겉과 속이 다른 삶.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
겉으로 드러난 삶은 거짓이고, 속으로 흘러가는 삶은 진실이다. 거짓은 영원이며, 항구적이고 진실은 비밀이며, 은폐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속 구로프의 삶은 이렇게 이중적이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반복 속을 살아가는 구로프는 영원 대신 자신에게는 진실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저급한 사랑을 선택한다. 그 사랑의 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 얼마나 무의미한 밤들이고, 무료하고 시시한 날들인가! 얼빠진 카드놀이, 폭식, 만취, 그리고 끝도 없이 반복되는 늘 똑같은 얘기들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가고 결국 우리에겐 날개도 없고 꼬리도 잘린 삶, 헛소리 같은 삶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_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p39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구로프와 안나는 영원한 생명 대신 순간의 욕망을 선택한다. 그들의 선택의 주위로부터 지지받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택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이성보다는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청개구리'와 같은 심성을 가지고 있어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기 때문일까.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아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끝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힘겨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_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p57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마지막은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와 같은 행복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선택의 마지막이 불행의 시작임을 알리는 글에서, 구로프와 안나는 감정의 일상에서는 어떤 일탈을 꿈을 꾸게될 지 생각하게 된다. 권태로운 일상이라는 항구성에서 일탈의 씨앗이 있다면, 뜨거운 사랑이라는 일상에서는 어떤 일탈이 잉태될 수 있을까...

이런 항구성에, 우리들 각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전한 무관심 속에, 아마도 영원한 구원의 약속, 지상에서의 삶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완성을 향한 무한한 진보의 약속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_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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