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비전을 구현하는 핵심은 국내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었다. 국제정치의 안전성은 국내의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해야 달성될 수 있거나 최소한 촉진될 수 있었다. 소비자 수요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공공사업과 공공보건에 대한 정부지출을 세금 재분배 정책과 결합하는 동시에 위대한 예술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했다. _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스의 삶>, p771
<평화의 경제적 결과>와 <고용, 화폐, 이자의 일반이론>. 케인스를 대표하는 두 권의 책이다.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며 또 다른 세계대전을 가져온 베르사유 체제의 문제를 지적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와 1930년대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미국 루즈벨트 정부의 뉴딜정책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고용, 화폐, 이자의 일반이론>은 각각 정치와 경제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대상으로 하기에 이들을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 이 점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스의 삶>은 독자들에게 케인스 사상의 연결점을 알려준다는 의의를 갖는다.
조앤 로빈슨은 <일반 이론>의 핵심은 경제적 생산 활동이 사회적 규범 및 정치적 현실과 무관한 일련의 독립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데 있다고 믿었다. 사무얼슨, 힉스, 한센이 "케인스주의"라고 제시한 수학적 관계들은 전부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인간이라는 주체를 제외하고 있었다. _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스의 삶>, p609
저자는 본문을 통해 케인스의 경제사상은 세계대전 전후 영속적인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정치적 토대 위에서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쟁직후 또는 대공황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소비를 통한 유효수요의 확대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상황으로 회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고, 경제위기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며, 그 결과 파시즘과 공산혁명과 같은 폭력적 사태를 예방하게 된다. 이처럼 케인스의 정치, 경제 사상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갖지만, 케인스의 사상에 대한 일반의 이해는 단면에 그친다. 저자에 따르면 케인스주의의 몰락은 결코 이점과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까지 미국의 최고 경제학자들은 모두 케인스주의자였지만 케인스 경제학을 국제적인 사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케인스와 케인스주의는 개별 국가가 불황에서 벗어나거나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조정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일련의 전략으로 활용도가 엄격히 제한되었다. 전쟁과 평화의 철학자인 케인스는 재정 치료사 케인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_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스의 삶>, p648
1960년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과의 역의 상관관계를 입증한 필립스 곡선의 발견 이후 경제학의 주된 흐름은 수리/계량경제로 옮겨가고, 오늘날 주류는 신고전학파가 되었다. 한때는 주류 경제학이었지만 지금은 공황의 시기에 이르러야 소환되는 케인스 경제학. 이것은 그의 정치철학과 경제철학을 분리시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을 위한 유효수요의 창출이며, 이를 통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보다 유연하게 그의 경제사상을 해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도 또한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