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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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불쌍하기도 해라!  _ 에밀 졸라, <돈>, p178/278


 에밀 졸라의 <돈>은 19세기 프랑스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자본(資本)들의 격돌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을 통해 제국(帝國)은 팽창되었으며, 승리의 결과로 얻어진 식민지에서의 이권(利權)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했다. 미래에 대한 낙관은 주가로 반영되었고, 그 결과로 주식시장에는 수많은 이들의 욕망이 밀어닥친다.


 시장이 개장된 이후, 군중은 개별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넘쳐흐르는 대하大河처럼 끊임없이 들이치는 물결 소리를 냈다. 이 엄청난 파도 소리 위로 공급과 수요의 불협화음, 즉 퐁풍 속에서 약탈에 나선 맹금들의 울음처럼 불안정한 음표로 고조되고, 잦아들고,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날카로운 외침이 지나갔다. _ 에밀 졸라, <돈>, p203/278


 <돈>에서는 주식시장에서의 인간 욕망만을 그리지 않는다. 미시적으로는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상황이지만, 거시적으로는 두 개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소비를 위해 주가를 부양하는 사카르가 매개 기능을 대표한다면, 로스차일드가의 모습이 비춰지는 군데르만은 저장 기능을 대변하며 또다른 워터루 전쟁을 치룬다. 


 50세의 정력적인 은행가 사카르는 집요하게 돈을 추구하지만, 재물을 축적하기만 하는 수전노가 아니다. 그가 축재에 몰두하는 진정한 이유는 재물을 소비하기 위해서, 그것도 과시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다(p268)... 유대인 은행가의 상징인 제임스 드 로트실드가 모델이라고 알려진 60대의 유대인 은행가 군데르만에게 가장 중요한 돈의 기능은 세번째 기능, 즉 저장 기능이다. _ 에밀 졸라, <돈>, p268/278


 <돈>에서 사카르와 군데르만의 자본전쟁이 사건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만, 독자들에게 더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것은 사카르의 성공 과정에서 카롤린 부인이 제기하는 물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돈은 선(善)일까 악(惡)일까. 아니면 둘 다이기도 하고, 둘 다 아니기도 할까.  


 무한한 권력 속에서 덧없는 인간의 양심보다 더 높이 추앙받는 돈, 피와 눈물보다 더 높이 군림하는 돈, 돈이라는 제왕, 돈이라는 신!(p145)... 불현듯 카롤린 부인은 돈이란 내일의 인류를 자라나게 할 거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카르에 따르면 투기 없이는 풍요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도 있을 수 없었고, 욕망이 없으므로 후세도 있을 수 없었다. 생명의 존속에는 이런 과도한 열정, 이처럼 천박하게 소진되는 욕망이 반드시 필요했다. _ 에밀 졸라, <돈>, p147/278


 사카르에게도, 군데르만에게도 돈은 수단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욕망으로 들끓는 시장에서 자신의 초심(初心)을 화학적 변화를 통해 잃지 않고 남아있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투자자가 초심을 찾는 그 순간은 이미 모든 게 무너지는 너무 늦은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식을 갖고 있지 않는 순간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때가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욕망과 함께 돈을 손에서 떠나 보낸 후에야 비로소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의 균형을 찾는 것이 아닐까... 에밀 졸라의 <돈>은 21세기 엔비디아, 테슬라 주식에 물려있는 이들에게도 매우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고전이라 생각된다...


 모든 게 너무 잘 나갈 때, 바로 그때 모든 게 무너지잖소. _ 에밀 졸라, <돈>, p20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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