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낼러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당신의 자아, 즉 '당신임'의 본질은 당신의 뇌 안에 들어 있는 뉴런들 사이의 상호연결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p17)...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의식이 어떻게 뇌에서 나오느냐"가 아니라 "우리 뇌가 어떻게 우리를 우리로 만드느냐"다. _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p31


 <시냅스와 자아>에서 저자는 뇌과학자로서 '자아'의 개념을 밝혀나간다. 세부적으로 생명의 특징을 결정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가 신경세포의 구조와 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신경세포들은 시냅스의 연결강도 조절을 통해 LTP(장기강화, Long-term potentiation)를 유발하게 되고, 그 결과 형성된 기억들의 축적을 통해 자아(自我)는 형성된다.

 

 모든 유전자들의 효과는 후성적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부의 화학적 환경 안에서 여러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일수도 있고, 외부환경의 자극이 시냅스 활동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들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들은 다시 시냅스에서의 신경활동을 조절한다. _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p166 


 시냅스전세포에서 분비된 글루타메이트는 암파 수용체와 NMDA 수용체 모두와 결합한다. 암파 수용체와 결합하면 시냅스후세포가 활동전위를 발화하게 되는데, 보통 세포들이 발화하는 것은 대개 바로 이 과정에 의해서다. 글루타메이트와 결합된 암파 수용체에 의해 시냅스 후 세포가 활성화되어 활동전위를 만들어 내게 되면 NMDA 수용체의 차단이 제거되며, 글루타메이트가 이 수용체 통로를 열어 칼슘이 세포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로 LTP가 일어난다. _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p249


 저자에 따르면 시냅스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 자아를 형성한다. 경험의 자극이 자아를 형성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자아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될 것이다. 경험은 기억으로 축적될 것이며, 이후 외부 자극의 변화에 대한 기쁨, 슬픔, 즐거움, 노여움 등의 반응은 축적된 기억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굳어져가는 기억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외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라는 사람'으로, '명사'로 인식되지만, 실상 그 사람의 존재는 '동사'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경험은 종종 유전자에 대한 대조로 간주된다. 그러나 '경험'은 다양한 의미와 끝없는 암시들을 가진 복잡한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경험의 역할은 유전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이 어떻게 뇌를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더 넓게 이해할수록, 그것이 어떻게 정신질환에 기여하는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경험들은 뇌에 영향을 미쳐 학습 동안 하나 또는 여러 시스템들에서 시냅스 변화로서 저장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냅스 가소성 또는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_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p490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감성(Sinnlichkeit)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성 (Verstand)을 통해 사고하며, 이성 (Vernunft)을 통해 지식 전체를 종합화함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틀에서 근대철학에서는 감성, 지성, 이성를 정의하고 이들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다. 마치 '겨울호랑이'라는 사람에 대해 규정짓듯. <시냅스와 자아>는 뇌과학을 통해 존재의 규정을 새롭게 한다. '명사'의 틀이 아닌 물리화학적 변화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의미가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易與天地準,故能彌綸天地之道。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精氣爲物,游魂爲變,是故知鬼神之情狀


 역의 이치는 천지를 준거로 삼는다. 그래서 역과 천지는 항상 대등하다. 그러므로 역은 천지의 도에 구석구석 아니 엮여 들어간 것이 없다. 역은 천지간에 꽉 차 있다. 역을 창조한 성인은 우러러보아 하늘의 질서를 체관하고, 굽어보아 땅의 이치를 체찰하였다. 그러함으로써 우주의 어둠과 밝음의 까닭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시원을 탐구하여 종료되는 곳으로 돌아가 그 과정을 다 파악하였다. 그러니 자연히 죽음과 삶에 관한 모든 이치를 깨닫고 종교적 미망에서 벗어났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삶은 삶이 아니다. 우주적 생명의 연속만이 있는 것이다.... _ 도올 김용옥, <주역계사전>, p93


 이러한 변화는 역(易)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효(爻)와 괘(卦)를 통해 드러나는 수많은 변화가 역의 본질이지만, 우리의 인식은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점괘에 머무르게 된다. 선택과 인식 사이의 짧은 순간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고 있다면 결국 점을 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작업이 아닐까. 어쩌면 건위천(乾爲天)과 곤위지(坤爲地) 사이에서 우리의 삶이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완성이 화수미제(火水未濟)의 미완성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역(易)의 본질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조금은 엇나갔지만, 글의 마지막은 <시냅스와 자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저자 조지프 르두가 이 책을 쓴 것은 2002년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후 AI(인공지능) 혁명이 가능했던 것이 병렬컴퓨터 구조이며, NDIVIA의 HBM이 이를 바탕으로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이 책이 가진 다른 의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겠다...


 나는 그로부터 처음 병렬컴퓨터 parallel computer를 듣게 되었다. 병렬컴퓨터는 우리가 익숙한 표준모델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이 컴퓨터는 순서에 따라 한 가지씩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단계들을 동시에 처리한다. 병렬컴퓨터들은 보통 데스크탑 컴퓨터와 달리 많은 연산 처리 단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능이 가능하다. 주어진 작업들을 여러 처리 장치들에 분산시킴으로써 직렬컴퓨터보다 작업을 더 빨리 수행할 수 있다. 뇌도 병렬컴퓨터의 일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뇌는 재고가 있어서 언제나 살 수 있는 기계와는 다르게 기능한다. _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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