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궁리하는 과학 6
자크 모노 지음, 조현수 옮김 / 궁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완성된 구조 자체는 그 모습 그대로는 그 어디에도 미리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의 설계도는 그 구조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자체에 이미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가 그처럼 자율적이고 자발적으로, 즉 어떠한 외부의 개입이나 새로운 정보의 주입도 없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_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p128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은 생존 生存을 위한 생명체의 필연적인 선택과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들의 우연적인 결합과 생성 사이의 간극에 주목한다. 자기 보존과 종족 번식을 위한 생명체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가치와 윤리를 만들어 냈다면, 생명 활동이 단백질 결합이라는 과학적 지식, 이들 사이에서 무엇이 본질 本質이라 할 수 있을까.


 바로 세 개의 리간드 사이에서 이뤄지는 협조적이거나 길항적인 상호작용은 완전히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리간드 자신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전적으로 단백질과 각각의 리간드 사이에서만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_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p106


 <우연과 필연>에서 저자는 진정성이라는 영역에서 윤리와 지식, 우연과 필연이라는 상충되는 요소들의 만남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발견한다. 표적 단백질의 특정 부위와 결합하여 신호를 발생시키는 리간드 ligand 그리고 이와 결합하는 단백질. 생물학적 목적을 위한 결합은 오직 리간드-단백질의 결합을 허용할 뿐 리간드-리간드 간의 결합은 허용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별개의 결합에서 저자는 '윤리와 지식'이라는 리간드와 '생명체'라는 단백질을 발견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통해 우연과 필연이라는 과학과 사회의 공리를 조화시킨다. 


 객관성의 공리는 '옛날의 결속'에 내포된 허위성을 드러내며, 그럼으로써 지식의 판단과 가치의 판단 사이의 어떤 혼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두 가지 범주가 행동과 담론에서는 불가피하게 서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정성 authenticite이라는 개념이 윤리와 지식이 서로 만나는 공동 영역이 된다. 이 공동 영역에서 가치와 진리는, 서로 결부되면서도 결코 서로 뒤섞이는 일은 없으므로, 그들 사이의 상호공명 共鳴을 깨달을 수 있는 주의 깊은 사람에게 그들 각자의 완전한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_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p248


 가치와 진리라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생명체 내부에서 조합시키려는 저자의 노력은 칸트의 종합판단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칸트의 종합판단이 수학과 물리학적인 관념화된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면, 자크 모노의 종합은 생물학이라는 현실 과학에 기반한 '종합판단'이라는 점이 아닐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또다른 독서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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