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교환양식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고(vigo)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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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계사의 구조>에서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의 이행을 주장했다. 본서는 그것을 재고하는 것이다. 나는 사회구성체의 역사가 경제적 베이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반대하지 않지만,  단 그런 베이스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교환양식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힘과 교환양식>, p11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의 <힘과 교환양식>과 이전까지 저작과 차이점을 갖는 부분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던 교환양식 D의 윤곽이 드러났다는 점에 있다. <트랜스크리틱>에서 논의된 초월적 관점으로 <세계사의 구조>에서 설명된 교환양식 관점에서의 구조를 조망했을 때 나타나는 교환양식 D에서의 힘. 그것은 '신의 힘'이다.


  나는 이때까지의 저작에서 교환양식에 대해 논해왔는데 A, B, C가 중심이었다. D를 본격적으로 마주한 것은 사실상 본서가 처음이라고 해도 좋다. D는 엄밀히 말해 교환양식이라기보다 교환 양식 A, B, C를 무마시키는 힘으로서 있는 것이다. 또 D는 'A의 고차원적 회복'으로서 생긴다. 중요한 것은 D가 인간의 의지나 기획에 의해 생겨난 것은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반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관념적인 힘, 바꿔 말해 '신의 힘'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힘과 교환양식>, p53


 주의할 것은 '신의 힘'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유일신(唯一神)의 종교, 제국의 종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주어진 권능이 제국의 종교로서 '제국=네이션=자본'을 결합시켜주는 매개체로 작동했다면, 고진이 말하는 보편종교는 우리에게 멀리 떨어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구약시대 모세의 곁에 있었던 신(神)과 같이 항상 곁에 있는 존재. 노동을 통해 생성된 가치가 아닌 관계 속에서 우리가 부여한 의미가 진정한 가치라면, 교환양식A로의 고차원적인 회복이라는 교환양식D는 우리에게 '국가(스테이트)-네이션'과 같은 큰 공동체가 아닌 '너와 나'라는 본원적인 관계로의 지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교환양식을 통해 화폐의 본질을 물신(物神)에서 찾은 것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는 페티시(Fetish)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한 단계 높은  교환양식 A로의 도약을 가능케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교환양식D는 우리 내면으로의 초월을 통한 '국가-네이션-자본'의 순환고리 극복이 아닐까.


 <힘과 교환양식>에 묘사된 교환양식D의 모습은 이전 단계 A-B-C의 파괴가 아닌 이들의 포괄(包括)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전 단계의 모순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대신 이들을 아우르는 공존. 이러한 지향을 통해 국가를 넘어선 세계 공화국으로의 가능성을 고진은 발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보편종교는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등장한 것으로 제국에 대항하는 것이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은 A의 고차원적인 회귀를 통해 B나 C를 초극하려는 것이다. 즉 D의 출현이다... 보편종교는 그저 토테미즘이나 부족종교가 단선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보편종교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다른 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의 계기는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보편종교 또한 끊임없이 모순에 노출된다. 또 그것은 어느샌가 공동체의 종교, 민족종교, 제국의 종교로 돌아가 버린다. _ 가라타니 고진, <힘과 교환양식>, p214


인간들의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기구를 만들고 이것이 현실의 토대가 되어 그 위에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며, 또 일정한 사회적 의식형태는 이런 현실의 토대에 대응한다. - P21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무의식‘을 가지고 왔다기보다 다이몬(정령)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좋다. 그것이 ‘페티시‘(물신)다. 즉 상품가치에 관련하여 페티시를 언급했을 때 그는 거기서 일종의 영적이거나 관념적인 힘이 출현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생산이 아니라 교환에서 온다는 점을 통찰한 것이다(p35)... 상품의 가치란 사물에 부착된 무언가다.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면 바로 거기에 부착되는 것이기에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페티시(물신)라고 부른다. - P37

나는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물신 문제를 계기로 그것을 사고하기 시작했다. 교환은 단순히 물건의 교환에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환에서 생기는 관념적인 힘은 상품물신, 즉 교환양식 C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복종하는 것과 보호하는 것이 교환될 때 국가권력이 성립한다. 그것은 교환양식B로부터 생겨나는 관념적인 힘이다. 그것 이외에도 교환양식 A와 D가 있고 그로부터 각기 다른 힘이 생겨난다. - P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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