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과학의 이론적 측면에 주어지는 상은 아니다.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 과학적 발견 및 기술에 주어지는 상이다. RNA 간섭이 이처럼 빠른 시간에 노벨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기술이 지닌 강력함을 방증한다. 현재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RNA 간섭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자는 거의 없다 할 수 있다. RNA 간섭은 생물학자들이 꿈에서 그리던 유전자 조절의 만능 도구를 제공했다.

이 결과는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전사된 RNA들이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mRNA의 경우, 기존 패러다임에선 단백질 번역을 위한 매개자라는 게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mRNA의 60퍼센트 이상의 부분이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결과임에 틀림없다.

미르의 발견 과정은 DNA의 구조가 발견된 것처럼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생물학자들은 RNA의 기능이 단지 전달자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RNA를 건너뛰고 DNA와 단백질의 상호작용만 연구해온, 집단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RNA는 단순한 ‘매개자’가 아니며, 나아가 적극적인 ‘조절자’로 자리매김했다.

미르는 일종의 자물쇠다. 미르는 mRNA라는 자전거가 도로를 달릴 수 없도록 묶어두는 자물쇠 역할을 한다. 거리를 달리는 많은 자전거들을 다양한 mRNA라고 생각해보자. 미르라는 자물쇠를 달고 있는 자전거들은 움직이지 않게 기둥에 묶인 자전거에 비유할 수 있다. 자전거들은 정해진 목표로 운송 중인 소포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게 단백질이다. 미르라는 자물쇠에 채워진 자전거는 그 소포를 원하는 목적지에 가져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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