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을 정복한 것은 그 혜택이 꾸준히 이어지는 획기적인 성과였으나, 동시에 큰 대가가 따르는 일이기도 했다. 1980년의 짧은 불황에 이어 잠시 반등한 경기는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깊은 침체에 빠져들었다. 그로 인해 1982년 11월과 12월에는 실업률이 10.8퍼센트까지 오르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하락은 실업률의 상당한 증가를 동반한다고 예측했던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이 맹렬한 기세로 부활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른바 ‘오일 달러의 순환’이라는 이 과정이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국가의 원유보유량 증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달러 강세와 미국의 고금리는 그런 대출금의(고스란히 달러화로 표시된 금액이었다) 상환을 힘들게 했고, 심지어 미국 경기의 약화와 유가를 비롯한 기타 물가의 하락도 오히려 남미 채무국의 소득 감소를 유발했다. 그 결과는 국제 채무 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정복한 일은 수십 년간 강하고 안정적인 성장이 이어지는 바탕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 시기를 대안정기 Great Moderation라고 부른다. 아마도 더 큰 교훈이 있다면 통화 정책에서 신뢰성이란 단지 말뿐이 아니라 오로지 실천과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일지도 모른다.

볼커의 강연은 당시 중앙은행 책임자와 경제학자, 나아가 정치인들이 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잘 요약했다. 첫째, 인플레이션 완화는 경제를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기초다. 둘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심리에 대처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낮은 수준에 묶어둘 정도로 충분한 신뢰를 얻고 끈기를 보여준다면 분명히 인플레이션을 낮은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은행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단기적 정치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한 채 통화 정책을 운용할 자율권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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