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미 의회에 진입해 가자지구의 평화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이 있었다. ‘우리의 이름으로 학살하지 마라’(Not in Our Name)를 외친 운동의 주체는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는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유대인 대 팔레스타인이라는 전쟁의 구도를 시온주의자 대 팔레스타인의 구도로 전환시키고 시온주의자와 유대인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렸다. 이 행동은 지배세력의 언어가 함몰시킨 진실을 드러내고 평화와 공존이라는 가치지향과 어긋난 세계의 참극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태도이다. 이름을 당당하게 거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공동의 이름은 책임의 고통을 긍정하고 여럿의 꿈을 감당하기 위한 발명품인지도 모른다.

공적인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과 책임회피는 다른 문제다. 그것이 한 개인의 부도덕함을 넘어 공적 세계에 대한 신뢰감 자체를 훼손하기 때문에 그렇다. 훼손된 신뢰감은 냉소주의를 부르고 경제적 손실로도 직결되며 또한 정치의 작동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위기상황이었던 팬데믹 시기, 공적 세계에 대한 신뢰감이 시민적 주체성을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역량을 담아낼 무형의 공기(公器)라고도 말할 만하다.

구성원들의 삶을 돌보는 일에 소홀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적 가치 역시 생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민생을 살피는 제대로 된 정치가 펼쳐지려면 돌봄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 복지를 살뜰히 돌보고, 그들이 꿈꾸는 가치를 반영할 때 민주주의의 정치는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돌봄의 맥락에서 새롭게 참고해야 할 시민성은 관계에 참여하는 자아 개념이다. 돌봄의 시민성은 취약성과 의존성, 상호의존성을 새롭게 사유하기를 권유하며, 그 실천은 구체적인 일상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좋은 삶’에 대한 적극적 탐색을 가능케 한다.

문학이 그리는 돌봄의 시민성은 인간 존재의 본성이나 유대를 상호의존적으로 보면서도 주체의 역량을 고려하는 실천적인 가능성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위기와 재난 속에서 국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공공적 돌봄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을 넘어 모든 시민들이 공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돌봄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이러한 서사는 취약한 존재의 고통을 서사로 끌어들이면서도 그것을 이해 불가능한 영역에 두지 않는 깊은 책임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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