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베네딕트 앤더슨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서 국민을 ‘상상된 공동체’라고 불렀다. 즉, 사람들끼리 직접 마주 대하는 공동체와는 달리, 이러한 공동체는 상상이라는 집합적 행위에 그 존립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나 미국인 또는 일본인이라는 자각을 특정 가족의 일원이라거나 특정 마을의 주민이라는 것만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는 서로를 강화한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는 한편, 이러한 방식으로 결합된 사람들은 공통의 정치권력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이고 국가가 공격당할 때에는 그 방어를 위해 결집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국민국가는 정치적 단위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왔다. 즉, 국민국가는 제국의 군대에 압도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크기를 갖지만, 동시에 저항이 필요할 때 그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작은 규모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는 것이 이 장에서의 내 논지다. 도시국가가 아마도 그 이상적 형태일 것이다. 국민국가가 성공한 것도 대중 매체를 사용해 사람들에게 정치의 실제에 자신들이 관여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감각을 최소한으로나마 부여함으로써 도시의 친밀성을 모방해온 데 있었다. 그러나 세계정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점점 증대되는 문화적 다양성이 현재 많은 국민 국가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그 문제는 세계정부에 더욱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정부는 현존하는 주요 문명들을 포괄해야만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문명 각각은 공공 정책에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이 반영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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