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경사에 큰 눈이 내려서 황제는 강무전(講武殿)에 전장(?帳)을 설치하고 자초구(紫貂?)와 모자를 쓰고 일을 보았다. 홀연히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옷을 입은 것이 이와 같은데 몸으로는 오히려 한기를 느끼니 서쪽으로 정벌하는 장수들이 서리와 싸라기눈을 무릅쓰는 것을 생각하니 어떻게 이를 견디겠는가?" 바로 초구·모자를 벗어서 중서황문을 파견하여 이것을 싸가지고 역으로 달려가서 왕전빈에게 하사하게 하고 또 제장들에게 뜻이 두루 미칠 수 없는 것을 유시하였다.
황제는 몸소 검약함을 실천하여 항상 세탁한 옷을 입었고, 승여(乘輿)와 복장과 쓰는 것은 모두 질박하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였으며 침전에는 푸른 포(布)에 위렴(葦簾, 갈대로 된 발)을 둘렀으며, 궁위(宮?, 궁궐의 쪽문)에 있는 장막에는 무늬가 있는 장식을 없앴다.
"경은 재상인데 어찌하여 스스로 고생하는 것이 이와 같소?" 범질이 대답하였다. "신이 예전에 중서(中書)에 있었는데 문에는 사사롭게 아뢰는 일이 없었고, 더불어 술을 마시는 사람은 모두 가난하고 천했을 때의 친척이었으니 어찌 기명을 쓰겠습니까? 이에 따라서 마련해 두지 않았으며 힘이 미치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을해일(3일)에 왕전빈 등이 출발인사를 하자 숭덕전에서 연회를 베풀었으며, 황제가 그린 그림을 꺼내어 왕전빈 등에게 주고 이어서 말하였다 "무릇 성채(城寨)에서 이기고 나면 다만 그 기갑(器甲)·추량(芻糧)만을 적어놓고 돈과 비단은 남김없이 나누어 전사(戰士)들에게 주는데, 내가 얻고자 하는 바는 그 토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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