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다. 바로 시씨(柴氏)가 어린아이로 하여금 천하를 주관하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붙지 않은 연고로 말미암은 것이다. 너와 광의는 모두 내가 낳았으니 너의 뒤로는 마땅히 그 동생에게 자리를 전해 주어라. 사해는 아주 넓어서 어른인 군주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사직의 복이다."

조보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하늘과 땅과 사람과 신의 복입니다. 이는 다른 연고가 없고, 방진(方鎭)이 지나치게 무거워서 임금은 약하고 신하가 강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지금 이를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오직 조금씩 그들의 권한을 빼앗고 그들이 가진 전량(錢糧)을 제한하며 그들이 가진 정예의 군사를 거둔다면 천하는 스스로 편안해 집니다."

황제가 말하였다."경 같은 사람이야 정말로 그러하겠지만 가령 휘하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부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어느 날 황포(黃袍)를 그대의 몸에 덮어준다면 그대가 비록하지 않으려한다고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석수신 등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신 같은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여기까지에 생각이 이르지 못하였으니 오직 폐하께서 애달프고 긍휼히 여기시어 살 수 있는 길을 지시하여 주십시오."

여진국(女眞國)에서 사자를 파견하여 명마를 공헌(貢獻)했다. 여진의 선조는 옛날 숙신(肅愼, 흑룡강, 송화강 일대) 땅에 거주하였는데, 원위(元魏, 북위)시기에 물길(勿吉)이라 불렸고, 수대(隋代)에 이르러 호칭을 고쳐서 말갈(靺鞨)이라고 하였으며, 당(唐) 초기에는 흑수부(黑水部)와 속말부(粟末部) 두 부(部)를 가지고 있었으며, 뒤에 가서 속말부가 대단히 강해져서 발해국(渤海國)으로 호칭하였고 흑수부는 이어서 그들에게 속하여 불리어졌다.

오대 이래로 절도사는 친하게 따르는 사람을 진장(鎭將)으로 보임하여 현령(縣令)과 항례(抗禮)하였지만, 무릇 공사(公事)는 오로지 주(州)에만 보내지니 현의 관리는 직책을 잃었다. 이에 이르러 다시 현으로 통할하니 진장이 주관하는 곳은 향촌(鄕邨)에는 미치지 못하고 다만 곽내(郭內)에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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