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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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그것을 거절한 것은 제 생에서 그때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p154)...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155/232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1909~1948)의 <인간실격 人間失格>에서 주인공 요조가 돌아본 자신의 인생이다. 그는 신에게 묻는다. 공포에 대한 무저항이 자신이 저지른 죄(罪)이며 불행의 근원인가를. 요조는 어떤 공포를 느꼈던가. 다른 이들과 자신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 이를 피하기 위해 요조는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닌 '주변에서 원하는 나'가 되고, 그는 모든 이들에게 사람받는 듯 보이지만 정작 자신으로부터는 사랑받지 못한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p18)...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20/232


 겉으로는 웃음과 미소짓고 있지만, 가면 속 자신의 모습은 이와는 달랐다. 겉과 다른 자신 안의 괴물을 발견했기에, 그는 그는 괴물을 닮은 자화상을 보며 진(眞)정한 아름다움(美)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다른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추(醜)의 미학을.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기를 바라는 심리.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몰아치기를 바라는 심리. 아아, 이 일군의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도깨비에게 상처 입고 위협받다 끝내는 환영을 믿게 되었고 대낮의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요괴를 본 것입니다.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46/232


 세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요조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그는 대신 죽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이란 결국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닐까 하는. 요조는 사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사회는 신뢰할만한 곳이라고 회심(metanoia)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새롭게 태어나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에게 관심을 갖는다. 요조의 사회는 아버지와 같은 무서운 곳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로, 다시 사회 계약론의 사회로 옮겨간다. 이처럼 요조의 사회는 죽음을 통해 달라졌다.


 여자도 누웠고, 새벽녘에 여자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습니다. 여자도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완전히 지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또 저도 세상에 대한 공포, 번거로움, 돈, 예의 운동, 여자, 학업 등을 생각하면 도저히 더 이상 견뎌내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그 사람의 제안에 쉽게 동의했습니다.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78/232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大洋)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115/232


  요조의 변화는 호리키와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죄(罪)의 반의어를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법(法)과 선(善)에서 찾는 호리키와 그렇지 않은 요조. 호리키에게 법과 도덕은 다르지만, 요조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 법과 선악(善惡)은 분리된 개념과 현실의 세계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그의 인식은 곧 깨지고 만다.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이건 어렵다."

 "법이지." 죄의 반의어가 법이라니!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하며 시치미를 떼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뭔데? 신이야?"

 "설마....... 죄의 반의어는 선이지. 선량한 시민. 즉 나 같은 것이지."

 "농담은 그만두자고. 그러나 선은 악의 반의어지 죄의 반의어는 아니야."

 "악과 죄는 다른가?"

 "다르다고 생각해. 선악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도덕이라는 것을 말로 표현한 거지."

"말이 많군. 그렇다면 역시 신이겠지. 신, 신. 뭐든지 신으로 해두면 틀림없어."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132/232


 엄청난 불행이 닥쳤을 때, 그는 사회에 대한 신뢰가 처절하게 깨져 나가면서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리바이어던이 다시 뛰쳐나왔음을 실감한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때 그는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인가? 선량한 상대에 대한 믿음의 대가가 과연 공포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그때 저를 엄습한 감정은 노여움도 아니고 혐오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엄청난 공포였습니다. 그것은 묘지의 유령 따위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신사(神社)의 삼나무에서 흰 옷을 입은 신령과 부딪쳤을 때 느낄지도 모를, 아무 소리도 안 나오게 만드는 고대의 거칠고 난폭한 공포였습니다. 저의 새치는 그날 밤부터 나기 시작하였으며 점점 더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점점 더 인간을 한없이 의심하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삶에 대한 일체의 기대, 기쁨, 공명 등에서 영원히 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137/232


 그렇지만,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요조는 선과 악, 죄에 대한 신의 대답을 기다린다.  자신의 불행이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면 그에 대한 신의 해명을 요조는 기다리지만, 신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기되는 심판 속에서 그는 불안감을 느끼고, 이제 그는 '익살'이라는 끈으로 사회에 맞춰 사람 사이에(人間)사는 대신 비합법의 영역에서 사람(人)으로 머문다. 이제 그가 생각하기에 감당할 수 없이 커져버린 죄로 인해 그는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요조는 결국 어렸을 때부터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공포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사회에 대한 신뢰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는 무저항이 문제였을까.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도저히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59/232


 요조는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에서 선악이라는 도덕적 관념과 죄악은 구분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죄에 대한 요조의 질문과 신의 침묵, 그 사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요조는 죄인이자 악한이 되버리고 말았으며, 결국 자신 스스로 선악이라는 도덕과 죄악이 분리될 수 없음을 입증하고 말았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p138)... 과연 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_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139/232


 <인간실격>에서 요조는 신에게 신뢰심과 무저항에 대해 묻는다. 그렇지만, 먼저 요조는 자신의 불행이 죄의 결과인지에 대해 먼저 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에 앞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직시(直視)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실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맞춰 변화되는 불안정 속에서 근원적인 실체에 대한 추구 -  인간이란 무엇인가 - 란 덧없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피의 무게랄까 생명의 깊은 맛이랄까, 그런 충실감이 전혀 없는, 새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그냥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느낌이 드는 것이다.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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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23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었던 <인간실격>을 호랑이 님의 리뷰로 다시 보니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저하고 다른 포인트를 잡으셨네요~ 신선한 리뷰 잘 봤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0-23 10: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인간실격>은 뒤늦게 읽은 만큼 더 강렬하게 다가오네요. yamoo님 활기찬 한 주 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