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4
앤서니 케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서광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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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역사를 통하여 용어 표현을 달리하면서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제기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쏜살같이 스치듯 마주치는 개별적인 것들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대상들(entities)이 정신의 외부 세계에 실존해야만 하는지를 묻는 물음이다. 고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나 형상이 물질이나 물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실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논했다. 중세에는 줄곧 보편자가 실재하는 것인지 기호에 불과한 것인지를 두고 실재론자와 유명론자 사이에 논쟁이 이어졌다. 현대의 수학철학자들은 수를 숫자와 동일시하는 형식주의자, 그리고 수가 정신 세계나 물질 세계가 아닌 제3세계를 구성하는 독립적 실재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자와 수학적 대상의 본성에 관해 팽행한 논쟁을 벌였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254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1931 ~ )의 <현대철학 A  New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volume 4 : Philosophy In The Modern World>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부터 1970년대까지 철학을 다룬다. 철학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앞 장에서 정리하고, 뒷부분에서 세부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케니의 서양철학사의 서술은 흔들림없이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현대 철학의 이 이전 시기의 철학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은 무엇일까. 중세의 유명론(nominalism)과 실재론(realism) 논쟁과 같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는 주제가 현대 철학에서도 다뤄지기도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자연과학의 독립과 수학의 도입이라 생각된다. 


 지칭 대상의 불투명 문제는 이 모든 양상 문맥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그 문제는 두 종류의 다른 지칭 대상을 구별함으로써 처리될 수 있다. 어떤 용어가 진정한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크립키의 전문 용어로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용어는 모든 가능 세계에서 지칭 대상이 동일해야만 한다. 그와 달리 뜻에 의해 지칭 대상이 정해지기 때문에 가능 세계에 따라 지칭 대상이 달라지는 표현들도 있다. '9=행성들의 수'에서 '9'는 사실상 어느 가능 세계에서나 계속 그 지칭 대상을 유지하는 고정 지시어이다. 그러나 '행성들의 수'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수를 지칭할 수도 있는 일종의 기술(description)이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174


 근대 철학에서 인식과 관련하여 감성(感性), 지성(知性), 이성(理性) 등 인간의 사고 능력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는다면, 현대 철학에서는 "내가 하는 '무엇'은 무엇인가?"라는 한 단계 더 들어간 질문과 답이 논의된다. '무엇'이라고 지칭되는 대상의 기호와 의미와의 관계 속에서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언어(言語)의 문제가 현대철학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언어와 대상 사이의 관계, 지각(知覺) 이전의 관계가 새롭게 주목되고, 사회와 언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간결한 수학적 표현 양식의 등장 등이 현대철학과 이전 철학의 큰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에 정통하는 것이 의심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p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보이기 위해서는, 누구든 p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데카르트의 극단적인 의심은 그 의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낱말들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떼문에 자멸하게 된다. (OC 369, 456)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23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철학은 이전 시대의 다른 어떤 철학보다 불명확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이전 시기의 철학들이 권위를 통해 극단적인 경우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진 데 반해, 반증가능성이라는 과학의 특성과 다원화된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화된 현대철학에서는 보다 세분화된 영역에서 간결한 방식으로 다양한 양태로 수많은 사상이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다윈주의는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개체종이 이전의 종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진화론적 압박과 선택의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그와 같은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에 의한 설명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전형적인 번식 집단, 즉 종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419


 제임스는 결론에서 우주의 최상의 실재(supreme reality)를 흔쾌히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설명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것은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가 신을 '모든 사물이 그들 존재의 법칙을 실현하려는 경향성의 흐름' 또는 '의로움을 향한 우리 자신이 아닌 영원한 힘'이라고 정의한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제임스는 종교를 본질적으로 감정의 문제로 간주했고, 감정을 본질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의 불분명한 표현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435


 근대 이후 과학을 새롭게 떠나보내고, 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현대철학.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이론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큰 흐름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한다면 케니의 <현대철학>은 좋은 개론서가 되리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크로체의 경우, 예술은 역사와 과학 사이에 위치한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일반 법칙이라기보다는 특수 사례를 다루기는 하지만, 예술의 특수 사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된 것이며, 과학처럼 보편적 진리를 예시한다... 크로체에게 예술의 핵심은 직관(intuition)이다. 직관은 실증주의자들이 뭐라고 말하든 느낌(feeling)과 동일하지 않다. 느낌은 표현을 필요로 하는데, 표현은 인지적 문제이지 감정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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