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의 전제는 다신주의 종교(예를 들어 헤르메스주의 문학이나 『칼데아의 신탁』에서 나타나는 종교들)와 철학(특히 플라톤주의)의 공통된 과제들, 즉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보장하고 이어서 신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과제였다.

이 세계에는 신성한 영적 실재의 파편들, 즉 지혜가 스스로의 열정으로 인해 신성한 세계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 ‘밖으로 흘러나온’ 파편들이 감금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파편들은 이어서 하류의 신과 그의 시종들이 창조한 인간의 일부 안에 침적된다. 이들이 바로 영지주의자들이다. 구원 과정은 이들이 자신 안에 내재하는 신성함에 대한 앎을 깨어나게 하고 이를 통해 신의 지체로 복원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이레네오에게 물질세계란 신이 원했고 그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힘으로 함께 실현하게 될 선한 창조의 일부를 의미했다. 그런 식으로 이레네오는 구약을 통한 계시와 예수를 통한 계시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정체를 구약을 통해 예수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역사 및 인류와 모든 피조물에게 부여된 운명의 영광스러운 완성과 일치시켰다.

그리스도교의 공인과 급격한 성장은 사실상 세속 문화와 철학의 주요 기관들에 대한 탄압 정치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리스 전통 철학에서 그노시스는, 단순한 지각aisthesis이나 견해doxa와는 다르다는 차원에서, ‘존재에 대한 진정한 앎’을 의미했다. 하지만 2세기에 들어와서 그노시스는 점차적으로 인간의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지능력으로는 취득하기 힘든 초월적인 차원의 지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영지주의 문헌들은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성격이 아닌 신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특징이 이들의 이론에서 하나의 체계적인 신학을 발견하기 힘들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영지주의는 본질적으로 이원론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를 선과 악이라는 자율적이고 강렬하며 서로 상반되는 원리들이 전투를 벌이는 일종의 무대로 간주한다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악과 어두움은 신성한 힘이 발산되는 곳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했고 신성한 힘의 기원은 하나, 즉 그 자체로 충만한 빛이자 선이었다. 세상이 악한 것은 오로지 신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지주의자에게 근원악은 사고에 의해 발생한 것도, 신의 적도 아니었다. 악은 오히려 신의 또 다른 일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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