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란 우리 믿음이 존재하는 세계로는 들어오지 못하며, 사실은 믿음을 낳게 한 적이 없지만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믿음을 끊임없이 거부할 수는 있어도, 믿음을 약화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번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불분명한 형태로 그 느낌을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우리를 해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여인이 나타났으면 하는 욕망이 자연의 매력에 뭔가 더 열광적인 것을 덧붙여 주었다면, 반대로 자연의 매력은 여인의 매력이라는 지나치게 한정된 매력을 더 풍부하게 해 주었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곧 여인의 아름다움이었고, 그녀의 입맞춤이 지평선의 영혼과 루생빌 마을의 영혼, 내가 그해 읽은 책들의 영혼을 내게 넘겨줄 것만 같았다. 내 상상력은 관능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힘을 얻었고, 관능적인 것은 내 상상력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 내 욕망은 이제 끝이 없었다.

내게는 그런 욕망이 순전히 내 성격이 만들어 낸 주관적이고 무기력하고 환상적인 창조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제 욕망은 자연이나 현실과 무관했고, 그리하여 현실도 모든 매력이나 의미를 상실한 채 내 삶에서 하나의 관례적인 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여행자가 기차 좌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려고 책을 읽을 때 그가 탄 기차가 소설의 허구 세계에 대해 그러하듯이.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내게 여러 다른 인상들을 동시에 느끼게 했으므로, 아마도 그 인상들은 결코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되어 훗날 내게 많은 환멸을 맛보게 했고, 또 많은 과오를 범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추억들이 서로 겹치며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그 추억들 사이에서 ? 가장 오래된 것과 ‘향기’로 인해 생긴 최근 추억, 그리고 내가 알게 된 다른 사람에 대한 추억 사이에서 ? 진정한 균열이나 단층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어떤 암석이나 어떤 대리석에서처럼 기원과 나이와 ‘형성’의 차이를 나타내는 돌의 결이나 색채의 다양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