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도-태평양 이니셔티브’ 두 거대한 지역전략이 대결체제를 잡아가는 목전의 형세는 적어도 다가올 미래가 미중 양국간 경쟁을 넘어 전세계 수많은 국가들을 행위자로 불러들이는 전면적이고 복합적인 아레나가 될 것을 예고한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초 동아시아론이 등장한 배경 자체가 1970, 80년대 민족민주운동의 시각으로는 탈냉전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전환에 대응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소산이었다. 창비의 동아시아론은 민족문학론의 태내에서 자라나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것으로서, 그 자체가 사상의 유연성과 자기혁신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리영희의 논설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데땅뜨를 물밑에서 추동한 시대적 논리를 헤쳐나가는 그의 눈이다. 리영희는 데땅뜨가 미국이 주도한 것도, 1970년대 들어 갑자기 발생한 것도 아니며, 전후 25년의 세계정세의 변화, 특히 1960년 이래 10여년의 변화가 만든 귀결이라고 보았다. 냉전의 긴장이 한층 드높았던 1950, 60년대에도 ‘평화공존’ ‘중립비동맹’ 등 냉전 논리를 이반하는 다원화의 힘이 국제사회 저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고 1970년대 초 거대한 원심력으로 가시화된 것이 데땅뜨라는 것이다. 그 흐름 한가운데 있는 것이 중국이었다.

미중 세력경쟁체제의 형성으로 ‘신냉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또다시 우리의 인식체계를 엄습하는 지금, 냉전체제 저변의, 그것을 이완하고 해체하려는 거대한 원심력에 주목했던 그의 혜안은 다가오는 대전환의 시기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즉 세계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강대국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포장된 허상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를 움직이는 다기한 동력에 실사구시적으로 착목함으로써 시대의 참된 논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중공을 높이 평가했던 핵심 이유는 중국이 냉전의 표층에 감춰진 원심력을 읽어내고 그 편에 섰다는 데 있었다. 미소 냉전의 이분법에 지배되지 않는 광대한 ‘중간지대’가 있으며 그 중간지대의 힘에 의지하는 한 시간은 중국 편이라는 마오 쩌둥(毛澤東)의 낙관주의야말로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포위망을 버텨낸 힘의 원천이었다.

지금의 ‘일대일로’에는 그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 이념의 빈자리를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막강한 중국 자본이 메우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명칭부터가 고대문명의 교융과 번영을 상징하는 ‘실크로드’를 참조한 데서 보이듯, ‘일대일로’가 모색하는 새 이념은 필경 모종의 문명론적 지향을 감추고 있다. ‘일대일로’를 자본주의 경제 양식을 극복하고 중국의 역사문명과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탈근대적 문명기획으로 풀이했던 왕 후이(汪暉)의 작업은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