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한류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한류의 발전이 한국사회가 이룩한 민주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희생 속에 국민이 쟁취한 자생적 민주주의라는 데"에 그 원동력이 있음을 간파한 김대중의 통찰은 어느 방향에서든 아직 유효하다.

문학성이란 기본적으로 주어진 작품을 문학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무엇, 즉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어떤 내재적 본질을 말하지만 때로 ‘탁월한’ 작품이 지니는 그 탁월함의 다양한 근거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어떻든 최근의 논란은 그런 식의 문학성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는 더이상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말미암는데 이 낯설지 않은 문제제기가 새삼 득세하게 된 배경에는 ‘페미니즘 리부트’와 장르문학을 포함한 대중문화의 부상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민족〓남성〓국학’의 갈등 없는 등식화에 근거한 민족문학사의 급격한 위상 축소라는 문제도 재점검이 요청된다. 이와 관련해 손유경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된 공동체’ 개념에 대한 아전인수식 수용이 민족주의 해체를 움직일 수 없는 시대조류로 둔갑시킨 핵심 근거가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정작 앤더슨이 "한 일은 민족이 가짜라는 믿음을 퍼뜨린 것이 아니라 민족이란 역사·문화적 구성물임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제시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명하게 환기한 바 있다.

어쩌면 한국문학사가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굴레는 앞서 거론한 탈민족주의 논의의 예에서 보듯 무엇이 끝나고 전혀 다른 무엇이 시작된다는 식의 단절론적 청산주의와 ‘자기 시대의 특권화’일지 모른다. 만약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볼 필요가 생겼다면 지금이 문명 전환기에 속한다는 점에서 언명 자체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바로 그러한 단절론적 청산주의와 자기 시대의 특권화부터 다른 각도의 접근이 요청될 것이다.

한편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한국사회는 자본주의체제의 전지구적 확산이 초래한 여러 모순과 복합적인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는 연구대상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 사회 변동과 급변하는 가족 이데올로기,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쇼비니즘에 가까운 의 결합, 고도로 산업화된 대중문화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경험하는 양면성, 기술과 자본에 대한 맹신이 야기하는 다양한 문제 등은 현대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민족지적 사례들이다.

영화학자 이남은 미국에 초대된 영화감독 봉준호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부조리’라고 답한 게 인상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적인 것’이라 했을 때 흔히 떠올리게 되는 한국의 전통이나 유·무형의 문화유산, 흥과 한(恨)의 정서와 같은 것이 아니라 부조리야말로 한국을 드러내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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