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에픽테토스는 오로지 ‘선택’과 ‘선택에 따른 행동’만이 우리에게 좌우되며 나머지(신체나 사물)는 별개의 것으로 남는다고 주장했다. 우리에게 좌우되는 것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 자체라고 본 것이다.

명상록』을 쓰면서 아우렐리우스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융합시키면서 내용의 차원에서는 그가 배운 이론들을 활용하고 방법의 차원에서는 대화와 변증법적인 양식을 활용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단지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대화록의 두 대화자로 동일한 인물, 즉 자기 자신을 등장시킬 뿐이다.

세네카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근거를 자연세계에서 발견했다. 벌들을 관찰하면서 그는 왕벌이 다른 벌들에 비해 탁월한 것은 단순히 몸집이 크기 때문이아니라 공격용 무기(침)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군주가 백성들 앞에서 이와 동일한 비폭력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세네카의 생각이었다(『자비에 관하여』, I 19, 3).

어떤 경우에든 세네카는 한 개인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즉 국가의 부패를 이유로 정치 참여의 거부를 합리화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보았다. 세네카의 이러한 입장에서 그가 제시하는 철학적 근거 뒤에 어떤 식으로든 네로를 모략하는 인물로 몰리고 싶어하지 않는 정치적인 신중함이 숨어 있음을 보게 된다.

스토아 철학자에게 건강이나 재산 혹은 여행의 편리함 같은 것들은 오로지 병과 가난과 불편함에 비해 ‘선호할’ 만하고 ‘가치’가 있을 뿐이다. 반면에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덕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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