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건축 - 조선·대만·만주에 세워진 건축이 말해주는 것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최석영 옮김 / 마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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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는 사람의 뜻이 반영된다. 달리 말해, '목적이 없는 건축'은 없다. 건축물 어디인가에는 그 목적이 반영되기 마련이고, 건축에 관여한 사람들, 특히 건축주의 목적이나 설계자의 뜻을 읽어낼 수 있다. 일본이 지배했던 지역의 건축을 살펴보는 이 책은 건축에서 지배 의도를 읽어냄으로써 지배를 다시 묻고자 한다. _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민지 건축>, p10/167

식민시대 건축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다시 살펴본다는 니시자와 야스히코 (西澤 泰彦)의 <식민지 건축 : 조선, 대만, 만주에 세워진 건축이 말해주는 것 日本の植民地建築―帝國に築かれたネットワ?ク>. 저자는 일본제국 시기 세워진 건축물들이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건축들과 다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 건축과 서구의 콜로니얼 건축은 달랐다. 첫째, 앞서 말했듯 일본의 지배 지역에서는 일본의 전통 건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둘째, 중국 동북 지방에서 두드러진 현상으로, 일본의 식민지 건축은 근처의 열강 지배지, 특히 중국 각지의 조계지나 조차지에서 콜로니얼 건축의 존재를 의식하고 세워졌다... 지배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성립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 건축은 유럽의 콜로니얼 건축과 같았으나, 일본의 전통 건축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점은 달랐다. _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민지 건축>, p133/167

식민지에 제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권력 중심 기관의 청사를 건설하는 것은 다른 열강과 같았지만, 제국주의 후발국가로서 일본은 자신의 전통양식을 주변부에 강조할 수 없었다. '검은 머리의 서양인'으로 자신들 역시 세계 무대에서 변방에 있음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제국주의의 현실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서구 열강과 대립하게 되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바뀌게 되지만.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물류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사회적 지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조선 각지에서 재료를 조달해서 지은 조선총독부 청사에서 볼 수 있듯이 건축 재료의 확보는 지배력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_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민지 건축>, p11/167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 건축물은 현지의 재료들과 제국의 변경의 기술, 정보,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정작 식민지 본국과 일본 전통 문화는 소외된 채 제국의 변경은 직접적으로 세계 또는 변경들과 접촉하며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어냈다.

식민지 건축의 보편성과 선진성은 건축가, 건축기술자, 도급업자 등 사람, 건축 재료, 건축에 관한 최첨단 정보의 확보와 이동으로 유익한 정보를 정확하게 손을 넣을 수 있어서 가능했던 측면이 강하다. 사람. 물건, 정보는 일본 국내와 개별 지배 지역 사이를, 그리고 대만., 조선, 중국 동북 지방 등 지배지 사이를 이동했다.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지배지 서로 간 이동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며, 이동의 방법으로는 항로와 철도를 들 수 있다. _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민지 건축>, p134/167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식민지 건축>에서 일본 제국주의 시대 건축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특성을 도출한다. 독일과 함께 제국주의 후발주자로서, 불과 얼마 전까지 이웃국가들과 대등하거나 열등한 위치에서 외교관계를 맺었던 일본. 빠른 개항과 서구 문물의 수용을 통해 군사력 등 외적인 면에서는 앞서있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제국의 중심을 자처할 수 없었기에 서양의 문화를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일본 건축은 식민 본국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건축을 예로 살펴볼 때, 일본의 지배지는 일본이라는 본국 아래 예속된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접해 있던 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일본 제국이라는 틀보다 넓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동아시아라는 틀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이긴 하나 일본의 식민지 건축이 세계 건축일 수 있엇던 것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지역이 인근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경우에 따라서 세계적인 규모로 자리매김되게 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_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민지 건축>, p135/167

주변부 자체 역량과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 식민시대 건축에서 본국의 기여는 철도, 항만 등 인프라 건축에 한정된다. 이러한 인프라의 구축이 사실 군사력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부수적 결과임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식민지 건축에서 일본 본국의 기여는 거의 없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건축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 전반에서 보여지는 부분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식민시기 일본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일본의 탈을 쓴 식민권력층과 친일세력에 의해 잔혹한 식민역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식민지 건축이 일본의 지배를 상징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식민지 건축의 숙명이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식민지 건축은 파괴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철거된 식민지 건축은 적었고 적극적으로 파괴된 것은 각지의 신사와 충령탑이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상황이 섞여 있었다. 하나는 식민지 건축인 기존의 건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해방 후의 사회 현실, 또 하나는 식민지 건축을 새로운 정권이 사용함으로써 권력의 이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_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민지 건축>, p13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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