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을 도입하기 위해 시인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아울러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 관한 담론을 ‘가능한 세계’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가 역사 서술보다 고차원적이라고 생각했다.

연민은 불행에 빠진 주인공을 향한 연민이며 공포는 재난의 잔인함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다. 이 두 가지 종류의 감정에 참여하면서 관객 혹은 독자는 카타르시스 혹은 정화를 경험한다. 즉 주인공의 고통에 참여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그 무시무시한 감정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그가 메타포에 ‘인식의 기능’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메타포를 이해하는 것이 "유사한 개념" 혹은 "비슷한 것들을 포착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방 이론에만 집착한다면, 예를 들어 새들이 화가 제우시스Zeusis가 그린 포도 알들을 쪼아 먹으러 모여 들었다는 전설만 중요시한다면(이것이 바로 예술을 모방의 모방으로 보고 비판하던 플라톤이 예술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시학』의 핵심적인 내용, 즉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방과 관련된 부분은 놓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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