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설립되면서 복수의 세계도 막을 내린다. 하지만 아테네가 세운 법의 세계에서 발표된 첫 번째 판결문은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포한다. 무죄 판결의 기준은 바로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이자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바라보는 남성 우월주의라는 원칙이었다. "자식들을 생성하는 존재는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저 그녀 안에 뿌려진 씨앗을 기른 모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생성의 주체는 그녀를 수태케 한 아버지다." 이는 아폴론이 오레스테스를 변호하며 했던 말이다. 복수와 법률의 대립을 대체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립이 부각되었을 때 결국 우위를 점한 것은 아버지였다. 그런 식으로 오레스테스는 혐의에서 벗어난다.

언급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은 아테네 법이 아들과는 달리 딸을 법적 상속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점이다. 딸들이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혼인 지참금뿐이었다. 하지만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경우 딸이 비록 재산은 물려받을 수 없었지만 가문의 재산이 그녀의 자식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여하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역시 초기에는 ‘선택과 배제’의 이원론적인 원칙을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형태의 정권하에서든, 시민이 된다는 것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어딜 가든 특권 보유자들은 외부인이 특권 계층에 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제한하려고 노력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반은 네 가지 원칙, 즉 (1) 평등, (2) 선거, (3) 보수, (4) 참여에 의해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는 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함으로써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적 방향을 제시했다(민주주의를 가장 우월한 정치체제로 간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국가들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델로스 동맹에서 탈퇴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이유, 즉 탈퇴가 아테네의 즉각적인 군사개입이라는 위협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아테네는 장기간에 걸친 압력으로 낙소스(기원전 465년), 타소스(기원전 463년), 사모스(기원전 439년) 섬을 동맹군에 가담하도록 만들었고 그런 식으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광명은 이처럼 빛과는 정반대되는 어두운 측면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모두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제국주의의 특징이었다.

한편 그토록 잔혹한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스파르타의 보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과 부자 들은 아테네를 정상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실패했고 중도적인 체제에 적응하는 데에도, 또 하나의 스파르타를 만드는 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반민주주의 운동을 이끌던 아테네 귀족들의 나약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키레네학파와 키니코스학파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물려받은 행복이라는 주제와 훌륭한 삶이라는 주제를 상이한 방식으로, 하지만 모두 이론적이기보다는 양식적인 차원에서 발전시켰다.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주의를, 디오게네스는 반사회적인 고행주의를 발전시켰지만 이들의 자전적인 삶의 구축은 이들의 철학적 작업인 동시에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모두 도덕적 이상을 하나의 미학적 전략을 통해 표현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혜를 이론화하는 대신 묘사하는 것으로 그쳤다.

판도라의 신화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점은 판도라가 창조되는 과정이다. 성서의 이브와 달리 판도라는 남성의 신체 일부에서 탄생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에 의해 물과 흙으로 빚어졌다. 여기서 드러나는 남성과의 차이점은 단순히 다르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판도라는 타자성을 표상한다. 헤시오도스는 판도라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여성이라는 종족genos과 여성들만의 부족들phylai이 그녀에게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 종족과 구별되는 ‘또 다른’ 종족이다. 헤시오도스는 모든 여성이 판도라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판도라의 여성은 남성의 기여 없이 자율적으로 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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