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도에는 사가기록화의 주제가 모두 담겨 있다. 사가기록화는 시대를 거듭하며 양반 사대부 개인의 이력을 기념하고 집안의 명예를 높이는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과거 급제를 추억하는 방회도나 회방연도, 유수나 관찰사 등의 지방 수령 행차, 장수를 축원하는 경수연(회갑연), 가정 화목과 집안 번창의 상징인 회혼례 등 사가기록화가 함의하고 있는 길상과 염원이 평생도 안에서 종합적으로 시각화되어 있다. 사가기록화를 통해 축적된 여러 양상이 양반 사대부들이 열망하는 인생 행로를 시각화하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여기에 18세기 이후 병풍화의 유행이 평생도 병풍이라는 한국 고유의 형식을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존중되는 이념이나 가치관은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그와 상관없이 숭상된 덕목은 높은 연치, 즉 장수였음을 사가기록화와 평생도는 시사하고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 노인, 덕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현덕의 소유자로서 높은 지위에 올라 국가를 태평하게 다스릴 수 있다는 인식을 평생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27 그중에서도 노인은, 사회적으로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은 따랐지만, 연치가 높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오래 살아야만 그 모든 복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9세기에는 장수하는 조신을 우대하는 조정의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욱 강해짐에 따라 왕은 회갑, 회혼, 회방을 맞은 대신 정원용과 그 자손들에게 최고의 은택을 베풀었고 기념일마다 어필도 하사하였다. 고종은 정원용이 벼슬살이를 시작한 지 70년이 되는 1871년에는 장손 정범조鄭範朝, 1833~1898에게 가선대부의 품계를 내려주고 90세가 된 해에도 내외손을 초사에 등용하고 옷감과 음식을 예외적으로 후하게 보냈다. 이처럼 국가에서 장수한 대신들의 기념일에 왕이 직접 의례에 친림하여 축하하고 자손들까지도 우대하는 것은 수를 누리는 인물을 조신으로 두는 것 자체를 국가의 경사이자 길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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