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기술을 놓고 볼 때 중국은 한심할 정도로 외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서 설계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미국 혹은 미국 동맹국에서 제작되었다.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시진핑은 생각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크건, 시가 총액이 얼마나 높건, 인터넷 기업이 그 핵심 구성 요소에서 외부 세계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그 공급망의 ‘생명줄’은 다른 이들의 손에 쥐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베이징은 기술을 감시의 목적으로 극대화하면서 AI와 독재주의를 결합한 21세기 혼종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중국이 저항의 목소리를 추적하고 소수 인종을 억누르는 데 사용하는 감시 시스템마저 인텔과 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의 칩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었다.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놓고 볼 때 반도체 설계, 지식재산, 장비, 제조, 기타 다른 단계 등을 종합해 보면 중국 기업은 6퍼센트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조지타운대학교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39퍼센트, 한국은 16퍼센트, 대만은 1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다른 어디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첨단 로직 칩, 메모리 칩, 아날로그 칩의 경우 중국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설계,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기계 장치, 한국과 대만의 제조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시진핑이 근심에 빠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 한국, 네덜란드, 대만이 반도체 생산 공정의 중요 단계를 독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덕분이다.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은 미국의 팹리스 기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성장할 수 있었고, ASML의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는 샌디에이고에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만들어 내는 전문적인 광원 생성 장비가 아니면 작동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17년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 박수를 보내던 청중 중 그 이면에는 심지어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마저 상상하지 못했던 과격한 세계 경제 개편의 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병철이 건어물상이었던 삼성을 세계 최고의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만드는 테크 기업으로 키워 낸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정부 규제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값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관계에 계속 공을 들였다. 둘째, 서구와 일본이 개척한 제품군을 특정해서 그것을 같은 품질에 낮은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셋째,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회사들과 경쟁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주저 없이 세계화를 선택했다. 이러한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삼성은 한국의 전체 GDP 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익을 달성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지식재산을 훔쳐서 화웨이가 혜택을 본 면이 있겠지만 화웨이의 성공을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지식재산과 영업 비밀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화웨이처럼 큰 회사를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화웨이는 효율적인 제조 공정을 개발해 낮은 비용으로 고객이 만족할 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화웨이의 연구개발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화웨이는 중국의 다른 테크 기업들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투입한다.

인텔은 오늘날에도 PC와 서버 분야에 쓰이는 칩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첨단 칩의 생산 능력에서는 한 발 뒤처진 상태다. 한편 TSMC와 삼성은 대만과 한국에서 가장 최첨단의 제조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 칩 조립과 패키징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루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