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훈민정음은 소리를 표현할 문자를 자연 모방적, 논리적, 체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점은 모음을 자음과 구별한 것, 초성과 종성의 소릿값을 동일하게 한 것 못지않게 대단한 점이라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의 뛰어난 기계를 취하려는 자는 결코 외국의 기계를 사들이거나 기술자를 고용하지 말고, 반드시 자기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배우도록 하여 그 사람이 그 일에 종사케 하는 것이 좋다.

조선의 도공은 청자 대신 백자 굽는 기술을 활짝 꽃피웠습니다. 백자 제작은 청자와 같이 시작되었지만, 고려 귀족이 비취색을 너무 좋아해서 완전히 뒷전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이 유교 국가를 표방하면서 검소하고 질박한 백자가 선호되었습니다. 청자를 만들던 도공들은 상감에 사용하던 백토를 청자 전체에 발라 백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백자는 청자 위에 장식을 했다는 뜻에서 ‘분청사기’라고 합니다.

목판본은 새길 때 공이 많이 들지만 인쇄 분량이 많을 때는 효율적입니다. 반면 금속활자는 조립과 해체가 쉽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을 조금씩 찍을 때 목판본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죠. 중국은 인구가 어마어마한 만큼 책을 값싸게 공급할 때는 목판본 인쇄가 금속활자 인쇄보다 더 유리했겠죠? 그에 비해 고려나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대체로 다품종 소량 인쇄에 적합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나 조선이 중국에 비해 금속활자 기술 개발에 훨씬 적극적이었던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봐도 수원 화성은 놀라운 설계에 따라 지어져 산뜻함, 견고함, 효율성의 결정체로 다가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전통 방식의 돌 성과 새로운 방식인 벽돌 성이 조화를 이루어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 겁니다.

당시 철도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어서 세계열강은 식민지를 비롯한 약소국의 철도 부설권을 따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99년 일본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철도가 놓였습니다. 일찍부터 일본은 한반도를 거쳐 중국 대륙까지 이어지는 철도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대륙 침략을 위해 철도가 꼭 필요했거든요. 철도를 우리 힘으로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과학문명이 실제로 세계에 기여한 현상은 의학 분야에서만 보이는데,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삼 재배 기술입니다. 인삼은 중국 기록에서 기원 전후 시기부터 약효가 알려진 이래 20세기 이전까지 최고의 건강 상품으로 인정된 약재입니다. 역사시대 이래 인삼은 중국 황제에게 바치던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한국과학문명의 가치는 세계에 끼친 영향보다는 세계 문명의 수용과 활용,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빛을 발합니다. 중국은 오늘날의 서양문명이 그러하듯 엄청나게 커다란 문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문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선진 문명에 주눅 들지 않고 한국문명이라는 몸체로 그 문명에 맞서 수천 년 역사를 엮어왔습니다. 천문학, 수학, 의학, 농학, 지리학, 군사기술, 그리고 인쇄술이나 도자기 제작 기술과 같은 수공업 기술, 의식주 관련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보였는데, 선진 과학기술의 변용과 독창적 발휘가 특징입니다. 중국과학문명을 모방하면서도 독자적으로 건설하고 유지해온 문명이므로 동아시아과학문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과학문명은 더 나아가 세계과학문명의 일원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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