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신화 1 - 기술과 인류의 발달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49
루이스 멈포드 지음, 유명기 옮김 / 아카넷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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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의 내적, 외적 요인을 어떻게 선택적으로 조직하여 의식적으로 지도하여 더욱 일관되고 더욱 이해하기 쉬운 전체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바로 자신의 몸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 낸, 신체 이외의 형태로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도구를 발명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돌이나 나무, 섬유로 만든 도구는 제 몫을 다할 수 없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78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 ~ 1990)의 <기계의 신화 1_기술과 인류의 발달 The Myth of the Machine: Technics and Human Development>은 초기 문명사에서 과도하게 평가된 '기계(machine)'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청동기에서 철기로의 도구 사용의 변화가 생산량의 변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생산량의 변화가 가져온 사회변동이 수렵채집경제에서 농업경제로, 도시문명으로 만들고 중앙집권적 제국을 만들었다는 일종의 상식을 저자는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초기 인류가 번성했던 것은 오로지 도구를 사용한 덕분이라기보다는 의례나 언어의 사회 활동에 의한 것이었다. 도구 제작과 도구 사용의 기술은 의례 표현과 말 만들기에 비하여 오랫동안 뒤쳐졌다. 애초에 인류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자신의 몸에서 끌어낸 형식화된 음과 이미지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점들을 공유하려는 노력들이 사회적 결속을 촉진하였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111


 저자 루이스 멈포드는 초기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리는 초기 문명에서의 모든 기술적 도구의 변화는 이러한 변화가 수용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수용이 가능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커진 뇌 용량으로 인간 정신은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상징(symbol) 체계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인프라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언어(言語)가 등장할 수 있었고 시간적 제약을 넘어선 지식의 축적 이후에야 잉여 생산물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루이스 멈포드에게 있어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결정짓는다. 


 인간의 정신은 뇌에 비해 특별한 이점을 갖고 있다. 즉, 일단 의미 깊은 상징을 창조하고 중요한 기억을 저장하게 되면, 정신은 그 특유의 활동을 뇌의 짧은 수명보다 훨씬 오래 남는 돌이나 종이 같은 물질에 옮길 수 있다. 유기체가 죽으면, 평생 축적한 모든 것과 함께 뇌도 죽는다. 그러나 정신은, 애초에 상징을 모으고 정리하는 개개의 뇌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적 매개물에게 상징을 전함으로써, 자기를 재생산한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53


 추상적 음성이 현실의 사람, 구체적 장소와 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말이 지닌 근원적인 마법적 특성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대단한 마법은, 이들 같거나 비슷한 음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이미 지나간 일을 상기시키거나 전혀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것은 동물세계의 폐쇄적 신호에서 인간의 열린 언어로 옮아가는 것이었다. 언어가 여기에 이르자,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의 살아있는 일부가 되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145


 루이스 멈포드가 기술적 발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술적 발전은 기껏해야 사회적 구조 변화를 따르거나 진폭을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앞서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초기 문명에서 정신적/사회적 변화는 초격차를 유지하며 언제나 과학기술을 선도했다는 <기계의 신화 1>의 내용은 5G,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추상성과 상상으로 다른 생물과 차별화해온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계로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새로운 종류의 기계에 불과할 것인가. 최근 사회 전반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문제와 함께 <기계의 신화>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보다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모든 기술적 진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간과되어 온 더 중요한 동력이 있었다. 곧,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존재의 모든 차원을 변화시킨 새로운 종류의 사회조직의 힘이었다. 그런 변화는 작고 현실에 밀착된 초기 신석기시대 규모의 공동체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선사시대의 가설적 재구축을 시도하면서 내가 보여주려는 것은, 모든 기술적 진보는 그 이전과 이후의 필연적인 심리적, 사회적 변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314

내 해석이 맞다면, 의례가 언어를 통한 효과적인 표현과 의사 전달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던 것처럼, 터부는 도덕적 훈련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이 둘이 없었다면, 인류의 발달 과정은, 수많은 강력한 통치자나 국가가 정신병적 폭거나 생명을 억압하는 타락 후에 만한 것처럼, 이미 예전에 끝났을지도 모른다. - P122

지적 담론의 전달 수단이라 할 수 있는 합리적 언어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직접적인 구체적 표현과 연상에서 조직적인 정신유형에 이르는 기나긴 인류 성장의 여정에 마지막으로 뿌려진 씨앗이었다. 신화는 그 여정에서 이루어진 첫 개화(開花)였다. 통일된 음성 담론, 합리적 담화, 추상적 상징주의, 분석적 뜯어보기는 그 꽃이 지고 꽃잎이 떨어지기까지는 불가능하였다. - P157

왕권과 함께, 추상으로서의 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힘이 ‘문명‘을 확인하는 중요한 표식이 되었다. 그것은 그 이전의 모든 문화의 규범과 형태에 반하는 것이었다(p349)... 역사를 통하여 그 비중은 가변적이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존재하는 ‘문명‘의 주된 특징은, 정치권력의 중앙 집중화, 계급 분리, 종신 분업, 생산의 기계화, 군사력 팽창, 약자에 대한 경제적 착취, 그리고 노예제의 보편적 도입 및 산업과 군사 목적의 강제 노동이다. - P350

인간기계의 위계 구조가 일단 확립되면, 그것이 통제할 일손의 수나 행사할 힘에는 이론적 한계가 없었다. 사실 인간적 차원과 생물학적 한계의 배제야말로 그런 권위주의적 기계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그 생산성의 일부는, 인간의 게으름과 신체 피로를 극복하기 위해 써먹은 무제한의 물리적 강제 덕분이다. 직업의 전문화는 인간기계의 조립에서 필수적인 걸음이었다. 공정의 모든 단계에 기능을 확실하게 집중함으로써만 초인간적으로 정밀하고 완벽한 생산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현대 산업사회 전반에 걸친 대규모 노동 분화와 세분화는 이때 시작되었다. - P374

자본주의가 번영한 곳에서는 성공적인 경제 기업을 위한 3개의 주된 규준이 확립되었다. 곧, 수량의 계산, 시간의 관측과 통제, 그리고 추상적인 금전적 보수에의 전심전력이다. 자본주의의 궁극적 가치 - 힘, 이윤, 위세 - 는 이들 원천에서 나왔고, 빤히 들여다 보이는 위장 아래의 그 모든 것은 피라미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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