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바위그림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에 새겨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는 아주 정교하게 쪼아낸 흔적이 많습니다. 돌 도구로는 이렇게 쪼아낼 수 없고, 정교한 청동 도구나 철기 도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쌀의 생산량이 늘어 주식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인구 1천만 명이 1인당 1가마 생산량에 도달했습니다. 공평하게 분배된다면 조선 사람 누구든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생산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식량은 늘 부족했고,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났습니다. 계급과 신분에 따라 식량이 불공평하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무궁화가 원래 우리의 나라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공식 꽃은 오얏, 즉 자두였습니다. 왕의 성씨인 이 씨가 ‘오얏 리 李’였기 때문이죠. 개화기에 열강들이 물밀듯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던 시절, 영원히 지지 말라는 염원을 담아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 지도이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땅 지도입니다. 두 지도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제작 시기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395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402년입니다.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나라를 세우자마자 하늘 지도와 세계지도를 만든 셈이죠. 이 세계지도도 새 왕조 건국과 관련되어 있겠죠? 그래서 이름도 거창하고 심오하게 지었나 봅니다.

다 이어놓고 보면, 지도의 윤곽선이 오늘날의 지도와 비슷해서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 정확성의 비밀 중 핵심은 경위선 방안법의 사용입니다. 전국 각 곳의 읍 지도를 유클리드 기하원본의 축소 비례 방법을 써서 동일 축척으로 네모난 방안에 정밀하게 이어 붙인 것입니다. 게다가 산악 지형은 넓게, 평야 지역은 좁게 보정하는 백리척百里尺도 응용되었죠.

위도와 경도를 쓰면서 전국 모든 지역을 같은 척도로 한데 합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서 한 일이 바로 이겁니다. 큰 지도, 작은 지도를 ‘똑같은 척도’로 그리는 거죠. 거기에다가 지도를 합칠 때 서양 기하학의 비례 방법을 썼습니다. 그래서 모든 읍과 도시 지도들이 더욱 정확하게 배치되었죠.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정상기의 백리척을 적용하고, 신경준의 방안 도법을 정리한 데 이어서 서양 기하학 방법을 세련되게 응용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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