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랑이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내게도 희망은 있었다. 눈치챈다면 난 당장 죽을 목숨이지만. 그가 방수포를 헤치고 튀어나올까? 걱정스러웠다. 그 대답을 놓고 두려움과 이성이 다투었다. 두려움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리처드 파커는 몸무게가 250킬로그램이나 되는 사나운 맹수였다. 발톱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이성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방수포는 화선지가 아니라 튼튼한 캔버스천이라고. 내가 높은 곳에서 그 위로 뛰어내려도 끄떡없었다고.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175/498


 얀 마텔 (Yann Martel, 1963 ~ )의 <파이 이야기 Life of Pi>는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한 호랑이와 함께 보낸 소년의 이야기가 큰 틀이자 하나의 골격이다.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호랑이와 함께 산다는 것. 그 자체로 하나의 위협이며 공포로 소년에게 다가온다. 공포를 느끼면서도 소년은 생명을 내려놓지 않는다.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포의 응원을 덕택이기도 하다. 소설 속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는 그에게 공포와 평온함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내 얼굴에 단호하고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그 순간 살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경험으로 보면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숨지으며 생명을 포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약간 싸우다가 희망을 놓아버린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 나도 거기 속한다 -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싸우고, 빼앗기며, 성공의 불확실성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생에 대한 허기로 뭉쳐진 아둔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229/498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248/498


 사실, 개인적으로 <파이 이야기> 전체 글 중에서 시선이 머무른 것은 생(生)에 대한 의지, 공포 등보다 아래의 문단이다. 좀처럼 넘어갈 수 없었던 이 구절은 소설의 구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구명보트라는 갇힌 공간. 소년과 호랑이의 일정한 거리.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질 수도, 넓혀질 수도 없는 반지름이다. 소년의 이름은 파이(Pi). 원주율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소수는 영원(永遠)에 대한 열망의 상징일까.


 원주율(圓周率), 파이(pi) = 원의 지름에 대한 원주(원둘레)의 비율. 3.141592....


 조난객이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도 바다가 속삭임에서 분노로 변하고, 상큼한 하늘이 앞이 보이지 않는 흰색이 되었다 칠흑같이 까맣게 변해도 원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은 언제나 반지름이다. 원주는 대단히 크다. 사실 원들이 겹쳐 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춤추듯 겹쳐지는 원들 사이에 붙들리는 것이다. 당신은 한 원의 중심이며, 당신 위에서 두 개의 반대되는 원이 휘휘 돌아간다.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322/498


 원(圓, circle) = 평면 위의 한 점에 이르는 거리가 일정한 평면 위의 점들의 집합


 이제 우리는 두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다. 소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원과 호랑이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원. 이들은 서로 다른 중심점을 갖기에 일정 부분을 공유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두 개의 원에서 생겨나는 것이 갈등이며 공포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도형을 그려보자. 소년의 중심점과 호랑이의 중심점으로부터 우리는 다른 도형을 그릴 수 있다. 타원이다. 이들은 각각의 원을 가지고 겹치는 공간으로 인해 갈등하지만, 각각의 중심점으로부터 다른 사건(배고픔, 갈증, 폭우 등등)을 바라볼 때는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가지며 이번에는 서로를 의존하게 된다. 


  타원(楕圓, ecllopse)= 두 초점 사이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평면 위의 점들의 집합


 이렇게 본다면, 소년 파이 위의 두 원은 호랑이 원과 둘의 타원이 아닐까. 호랑이 원이 주는 공포와 위협과 소년-호랑이 타원이 주는 위로와 평안이 소년 파이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상반된 힘은 아니었을까를 도형의 정의를 통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다만, 여기에서 반전은 언어와 비유를 통해 나중에 드러나는 호랑이의 정체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소년과 호랑이의 거리는 추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언어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영어든 일본어든 언어를 사용해서?이미 창작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나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도 이미 창작의 요소가 있지 않나요?" ... "현실을 반영하는 언어를 원하나요?"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447/4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