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 마오가 죽을 때까지 재생의 희망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문화혁명은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는 노력이 혼란, 내부 투쟁, 당혹감, 고립 그리고 파괴 속에서 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30년의 역사는 열망과 배신, 새로운 시작과 경착륙, 실험과 실패의 역사다.

공산주의는 역사 발전의 법칙을 통해 나타날 이성적인 체제였다. 사회주의는 그러한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 있는 이행적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 공산당은 전위로서 사회에 대한 권력을 독점하고, 민주집중제로 불리는 새로운 제도적 질서로 통치했다.

특정 집단들로부터는 지지를 얻었을지 몰라도 혁명 직전까지도 공산당은 폭넓은 지지와 수용을 얻지 못했다.
근본적인 정당성의 부재는 처음부터 공산당 통치의 특징이었다.

당 기구는 새로운 국가의 핵심에 있었다. 당이 혁명 기간에 군대를 통제했던 것처럼, 새로운 민간 행정 기구를 만들고 통제했던 것은 당이었다. 정부의 모든 층위에서 의사결정의 권력은 공산당 손에 있었다.

정부와 당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구별된 채로 남아 있었다. 당은 지방 사회에 스스로를 주입하고 지방 사회와 깊은 상호작용을 했다. 당은 또한 마오주의적인 정치적 전망과 손상된 국가를 위한 회복의 기획을 제시함으로써 성공적으로 국민 대부분의 추종을 확보했다.

한반도에서 미 제국주의와 싸운다는 결정과 내부 계급투쟁 선언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 전쟁은 토지 개혁을 가속화하고 농촌 경제에서 더 많은 자원을 추출해야 한다는 훨씬 더 큰 압력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므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경제 정책의 변경을 이끌었다.

공산당에 정치 학습, 고백, 비판을 통한 지식인의 재교육이 사상 개조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었다. 당은 개인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저장함으로써 문화 영역에 통제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