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외부적 압력 외에 군벌의 내부 위기가 중국의 미래를 빼앗고 있었다. 군벌은 중앙 국가로부터 성이나 지방의 지도자들에게 군사 지휘권이 이양됨으로써 권력을 획득한 자율적 군사 지도자들이었다. 청 말부터 점진적으로 시작된 중앙 권력의 분산은 민간 질서의 동요와 지방 사회의 군사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민국 시대에 중요한 사회적 결과를 가져와서 폭넓은 군사와 폭력의 문화가 자리 잡아 사회를 형성하고 나라를 뒤흔들었다.

1911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은 다시 단일한 중심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것은 ‘대원수’大元帥 장제스의 일인 통치하에 있는 일당 정부였다. 이러한 성취가 널리 존경받고 소중하게 여겨졌지만, 많은 경우 견고한 지역과 성의 권력은 표면상으로만 참여했을 뿐 제거되지 않았다. 중앙정부에 대한 세금 지불을 거부하는 성들이 있었다. 국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었고 정부는 나라의 많은 부분에 대해 불확실한 장악력만 가지고 있었다. 장제스의 지도력 역시 확고한 것과 거리가 멀었고 계속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를 반대하는 주요한 원인은 개인적 권력 증대에 대한 경계심과 난징의 중앙집권화 요구에 대한 공포였다.

두 가지 서로 다르면서 경쟁하는 구상이 작용했다. 첫째는 국가의 통제와 민간 부문에 대한 지원을 결합한 민족 경제의 발전을 지향하는 왕징웨이와 쑹즈원의 경제 정책이었다. 이 계획은 농촌 부문의 소득을 증대함으로써 공업 상품에 대한 국내 시장을 발전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는 국가의 통제와 계획을 수반했지만 민간 기업에 성장할 공간을 주는 경제발전 전망에 기초했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의 진출에 점점 더 위협을 느끼면서 중국의 국가는 경제에서 더 큰 역할을 맡고 좀 더 직접적이고 개입주의적인 간섭을 하려고 계획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마오 시대 중국의 특징이 될 계획경제’의 시작을 포착할 수 있다.46 이러한 국면에서 자본가들은 사회나 정부에서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했고, 장제스 치하의 당은 반자본주의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장제스는 그의 경력 전체에서 중국 도시 지역의 은행가와 상인들의 다양한 조직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1928년의 중국 재통일은 현실보다는 희망이었다. 많은 지역이 (변경지역의 군벌이 통제하는 곳들과 같이) 느슨하게 통합되어 있거나 (조약항이나 공산당이 도망가서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의 은닉처를 만든 반란 지역과 같이) 국민당이 직접 통제하지 못했다.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발전이 조약항과 공산당 지역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외국인들이 관리하던 조약항에서는 도시적이고 코즈모폴리턴적인 문화와 현대적 공업이 역동적으로 계속 확장되었다.

관동군은 만주국을 개발하고 통치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모범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관동군의 지도에 따라 새로운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군사 파시즘’적 요소와 위계, 복종, 존중과 같은 유교적 규범의 조합이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제도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이 국가가 후원하는 대중 조직인 협화회協和會였다. 중앙과 지방 사회의 중재자로서 협화회는 관료, 교사, 그리고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들을 모두 각각의 기관에서 새로운 국가의 시책을 실행하는 데 참여시켰다. 만주국 국가는 각각의 집단이 국가 안에서 정해진 장소와 명확하게 규정된 기능을 가지는 조합주의적 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동시에 개인의 권리는 무시되었고, 저항은 독재적이고 종종 잔혹하기까지 한 조치로 진압되었다.

이 점에서는 민국 시대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더 분명한 국민 정체성의 감각이 생겨났다. 국민은 국방과 국가 건설의 맥락에서 형성되었다. 또한 외국의 침략에 대항해 국가를 동원하려는 계속된 노력으로 구체화되었다. 국가 건설에 내재된 이러한 재현의 과정 혹은 국민을 규정하는 과정은 ‘중국’을 의미 있고, 실체적이며, 개인적인 개념으로 만들었다.

혁명 만들기, 전쟁, 민족주의 등으로 형성된 이러한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중국 정부 제도의 목표와 구조는 모든 지역과 질서를 특징짓는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 국가의 강화를 향한 상당히 뚜렷한 발전이 있었다. 군벌로 시작해서 국민당으로 끝난 서로 다른 행정부에 사회와 경제에 대한 통제의 강화는 독립을 유지하고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전제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전쟁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지만, 일본에 저항하는 동안 중요한 동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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