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한 근대성 - 현재의 존재론에 관한 에세이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황정아 옮김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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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한 근대성>은 근대성의 '단수성'을 설파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근대성 담론에 대한 맑스주의적 해체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대성에 연루된 각종 자가당착과 내적 한계를 짚어가는 그의 분석에서 핵심은 앞서 말한 대로 근대성 담론은 근대성이라는 비유가 투사된 서사이며 그것도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서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_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옮긴이의 말>, p272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 ~ )의 <단일한 근대성- 현재의 존재론에 관한 에세이 A Singular Modernity: Essay on the Ontology of the Present>는 옮긴이의 말에서 드러나듯, '근대성'에 담긴 일종의 모호성 또는 이중성을 지적한다. 저자는 근대를 먼저 '단절'로 규정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 잘 나타나듯 근대 이전과 이후 단어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근대화의 힘은 단어의 의미를 단층(斷層)처럼 어긋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규정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시대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 근대의 모호성은 드러난다.


 '근대'라는 용어에 우리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핵심은 바로 이런 단절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노부스(nonus)와 모데르누스 사이의, 새로움과 근대 사이의 구별이다. 모든 근대적인 것은 반드시 새롭지만 모든 새로운 것이 반드시 근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_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 p26


 우리가 확인하고자 했던 바는 단절(break)과 시대(period)의 변증법이고 이는 그 자체로 연속성과 파열이라는 (다시 말해 동일성과 차이라는) 더 광범위한 변증법의 한 계기다. 후자의 과정은 스스로를 멈추거나 '해소할' 수 없고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과 범주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다. _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 p32


 프레드릭 제임슨은 '서사의 내재화'라는 개념을 통해 모더니즘 안의 차이와 반복을 드러낸다. 근대 이전 시기와의 단절을 선언한 2차 대전 이전의 전기 모던과 자기 회귀적인 후기 모던이 차이를 보여준다면, 모더니즘을 부정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사실은 직전의 후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일종의 시대의 반복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은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단일한 근대성> 서두에서 '근대'(modern)라는 단어의 사용이 이미 5세기부터 있어왔음을 말한다. 빅히스토리에서 여러 차례의 대멸종과 이전과는 다른 생명체의 번성이 반복되어온 것처럼,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근대의 의미는 반드시 자본주의와 연관지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제기한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영어의 modenity를 근대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현대성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고민에 다른 실마리를 제시한다...  


 결정적인 것은 서사의 내재화(interiorization)다. 서사는 이제 예술작품 내부에서 도출될 뿐 아니라 작품의 근본 구조가 된다. 통시적이었던 것이 이제 공시적인 것이 되고, 사건들의 시간적 연쇄는 예기치 않게 다양한 요소들의 공존이 되며 이런 요소들이 행하는 재구조화가 마치 영화의 정지화면처럼 포착되고 정지된다. _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 p145


 고전적인 모던 내지 본격 모던은 재현 자체에 대해 반영적이고 자의식적이다. 대체로 그것은 재현이 내적 논리에 따라 자체의 반(半)자율적인 진로를 밟아가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재현이 스스로를 자신의 내용과 대상에서 분리하도록, 말하자면 스스로를 해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p227)... 내가 보기에 후기 모더니스트들에게 귀속되는 반영성은 이런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후기 모더니즘적 반영성은 모더니스트로서의 예술가의 지위와 관련되고, 예술에 관한 예술, 예술 창조에 관한 예술로의 끊임없는 그리고 자의식적인 회귀를 내포한다. _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 p228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본적으로 단절하려고 한 것은 후기 모더니즘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은 그것과 단절함으로써 고전적 모더니즘이나 심지어 근대성 일반 내지 근대성 그 자체와 단절한다고 상상한다. _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 p241

단절과 시대의 변증법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핵심은 이중적인 움직임이다. 한편에서는 연속성의 중시, 곧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음새 없는 이행에 대한 고집스럽고 확고한 강조가 서서히 근본적 단절에 대한 의식으로 바뀌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단절에 집중된 관심이 점차 그 단절을 하나의 자체적인 시대로 바꾼다. - P33

근대성의 비유는 리비도를 장전하고 있다. 즉 그것은 다른 형태의 개념들과는 잘 연결되지 않는 독특한 종류의 지적 흥분을 작동시킨다. 이는 분명 기쁨이나 열렬한 기대 같은 정서와 희미하게 연결된 하나의 시간적 구조로서, 현재의 시간 안에 약속을 응축해 넣고 현재 그 자체 안에 미래를 더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법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 P45

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Dialectic of Enlightenment)에 바탕을 두고 있는바, 여기에 따르면 이른바 지식과 과학의 진보라는 것은 일종의 낯설게하기이며 이는 이전의 합리성을 미신의 지위로 강등시키고 결국에는 실증주의라는 반(反)이론적 황무지로 보낸다. 그러고나면 이 새로운 설명의 관점이 훨씬 더 만족스럽고 이해가능한 과정을 통해 이른바 모더니즘적 혁신이라는 목적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 P181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바는, 모던한 작가들에 있어서 그런 형식은 결코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한 마주침에서 실험적으로 발생해 결코 예단할 수 없는 구성물이 되어간다. 형식의 구조가 미리 알려질 때, 즉 주어진 또는 이미 선택된 내용의 날것 그대로의 경험적 요소들이 충실히 따라야 할 일련의 필수요건으로서 미리 알려질 때 동학의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형식을 미적인 것의 자율성 또는 예술작품의 자율성으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이상이자 처방으로서의, 또 규제원칙이자 지고의 가치로서의 미적 자율성은 모더니즘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부산물이자 나중에 덧붙여진 관념이었다는 게 지금까지의 이 글의 주장이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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