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나 아테네에서 실제로 구현된 정치체제는 처음 그들이 지향했던 목표가 현실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 상황을 반영한 타협의 결과물이다. 반면 중국에서 공자는 군주에게 정치적·법적·도덕적 지침 일체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자신만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주나라에서도 신적 존재가 군주 권력의 근거로 작동했다. 그리스나 로마에서처럼 중국에도 삶의 각 부분을 책임지는 신들이 무수히 존재했지만, 정치적·군사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존재는 단 하나, 바로 천天이었다. 중국 사상에 따르면 ‘천’은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진 신으로, 인간의 행위에 기뻐하거나 분노하고 천명을 내리거나 회수할 수 있으며 희생물을 바쳐서 달래야 하는 존재였다.

주나라의 군사적·행정적 변화는 보다 광범위한 경제 변화를 수반했다(그리고 그것을 유발했음이 틀림없다). 농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농업 분야는 국가가 소유한 땅에서 공동 생산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토지의 개인 소유와 상품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자유시장으로 이행했다. 화폐의 도입도 변화를 촉진했다.

로마 사회에서 중시했던 미덕과 공자가 꼽은 훌륭한 군주의 자질이 겹치는 부분도 많지만(예를 들어 ‘인’은 후마니타스humanitas, ‘덕’은 디그니타스dignitas, ‘의’는 아욱토리타스auctoritas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로마 공화국의 지도자들에게는 끊임없는 금욕적 수양이 강조되지 않았다.

후대의 기록들은 노자와 공자가 서로 상반된 견해를 주장하며 치열하게 경쟁한 것으로 묘사한다. 사회 운영에 대한 두 사상의 견해차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교는 사람이 도, 즉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반면 도교는 사람이 도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정치혁명과 정치철학이 고대 사회가 직면했던 문제에 대응하고 한발 앞서 나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테네, 로마, 그리고 중국 노나라는 몇 차례의 대내적 사회 변혁과 대외적 전쟁을 경험하면서 몇몇 인물의 주도하에 국가 구성원들의 요구를 조율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세 나라에서 각각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가 출현했다.

폴리비오스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혼합된 로마의 균형 잡힌 정체와는 달리, 카르타고의 민회 투표권은 민중에게 과도한 권력을 주어 결국 카르타고가 로마에 패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가 속한 공동체 관계를 재정립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대 세계를 더욱 가까이, 주로 폭력을 사용하여 연결했다. 그들이 각자의 세력권을 확장하고 동맹을 구축하면서 전쟁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단일 통치자의 지배하에 거대하고 통합된 공동체가 탄생했다. 이런 움직임의 결과 특히 동쪽에서 외견상 무질서하게 시작된 대이주로 인해 세계는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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