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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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을 잡고자 하는 자들은 언제나 사회의 약점이나 사람들의 두려움을 날카롭게 간파해 교묘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그것은 민족적인 차이일 수도 있고, 피부 속에 있는 멜라닌 세포 양의 차이일 수도 있고, 사상이나 종교의 차이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약물 사용, 폭력 범죄, 경제 위기, 공립 학교에서 기도 시간 허용 문제, 국기 같은 깃발의 '모독(冒瀆)'이나 '탈신성화(descrating)'일 수도 있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362/408


 칼 세이건(Carl Sagan, 1934 ~ 1996)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악령(惡靈)'은 단적으로 '폐쇄된 사회에서 만들어 낸 검증불가한 사실'을 말한다. 칼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의 두 저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과 <추측과 논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의 결론을 대중들이 알기 쉽게 쓴 책이다. 또한, 이 책의 정신을 담고 세이건 사후 2000년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정리한 매거진을 <스켑틱 SKEPTIC>이라고 생각된다.


 유사 과학은 틀린 과학과 다르다. 과학은 오류를 바탕으로 발전한다.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언제나 틀린 결론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잠정적이다. 가설들이 세워지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반박될 수 있다.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대안적 가설들은 실험과 관찰과 마주친다. 과학은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암중모색을 하고 여기저기를 헤맨다. 물론 과학적 가설이 반박되는 경우에 독특한 감정이 일어 마음이 상하기는 하지만, 반증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이라는 일의 정수(精髓)이다. 유사 과학은 정반대이다. 유사 과학의 가설들은 어떤 실험을 통해서도 반증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26/408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반(反)지성주의, 반 유사 과학, 종교, 외계인과 UFO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 자신이 <콘택트 Contact>라는 소설을 통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언뜻 본문의 내용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검증가능성'임을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신념마저도 비판(批判)대에 서슴없이 올려 놓을 수 있는 태도가 진정한 과학(科學)의 길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회의주의적 사고란, 결국 합리적인 논의를 구성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을 현혹하는 사기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일련의 추론을 통해 나온 결론이 마음에 드는가가 아니라, 그 결론이 전제 내지 출발점에서 제대로 유도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그 전제가 참인가 하는 것이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183/408


 우리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통해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하는 어떠한 형태의 도그마(dogma)도 거부하는 과학자의 모습과 함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저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 보편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의 실천과 같은 문제는 분명 과학적 증명의 대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위치는 바로 이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유사 과학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하지만, 동시에 전작 <코스모스>에서처럼 인간에 대한 세이건의 따뜻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차이는 한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른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형이상학에는 실험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42/408


 나는 남편의 기일에 남편의 무덤을 찾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하는 여자를 보고 비웃거나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한다.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183/408


 그와 함께 과학과 민주주의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그의 말 속에서 과학 또한 자유, 평등과 더불어 태어난 혁명(革命, revolution)의 결과물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칼 포퍼의 책을 통해 한 걸음 깊게 들어가보도록 하자...  


 과학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서로 잘 부합하며, 많은 경우에 구분이 불가능하다. 문명화된 형태로 구현된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바로 기원전 7~6세기의 그리스였다. 과학은 애써 배운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그 힘을 나눠준다. _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p41/408

군부, 정계, 정보 기관에는 내부 사정 때문에 비밀 유지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있다. 비밀 유지는 자신들의 무능과 그것보다 나쁜 오류에 대한 비판을 막고, 책임을 모면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밀주의는 국가 기밀을 취급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 계급이나 기득권 집단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런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반 시민 대중과 구분된다.(p87/408)

인간은 충분히 오랜 시간 속다 보면 속임수라는 증거가 나와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가장 슬픈 역사의 교훈 중 하나이다. 진실을 찾는 데 관심을 잃고 속임수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게 된다. 속임수에 낚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너무나 괴로운 탓에 사기꾼에게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고 나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오래된 속임수가 새로운 옷을 입고 계속해서 살아남게 된다.(p200/408)

과학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고약한 미신에서 해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고약한 불공정에서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보통 미신과 불공정은 종교와 세속 권력이 손을 잡고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은 실제로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혁명, 종교에 대한 불신, 그리고 과학의 부흥이 같은 시기에 연달아서 일어나고는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은 과학을 성정하시키기 위한 필요 조건일 뿐 그것만으로는 충분 조건이 아니다.(p279/408)

고통은 민주정이 작동하는 나라보다 독재정이 작동하는 나라에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냐하면 민주정보다 독재정이 행해지는 나라에서는 통치자가 나쁜 일을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하면 쫓겨나는 것, 이것이 정치에서 작동하는 오류 수정 장치이다.(p37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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