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하던 1970년대에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 통념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의식하고 그것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자본주의란 것은 역사에서 늘 존재해온 시장경제와는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해방과 개방 그리고 다른 세계로의 접근"을 뜻하는 시장의 세계와 거대한 독점세력이 판치는 근대의 반(反)시장적 자본주의를 구별하고, 후자가 전자 위에 얹혀 동행해온 근대의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착각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맑스(K. Marx, 1818~83)와 월러스틴(I. Wallerstein, 1930~2019)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자본주의를 천착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실천적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각기 자기 시대의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작동원리에 따라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문명의 대전환을 꿈꾸었던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월러스틴은 그것이 역사적 체제이기에 소멸만 확실할 뿐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는 그 과정의 혼돈의 분기점에서 인간의 집단적 실천에 달렸음을 강조한다.

결국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경제나 임노동제 같은 특징들로 환원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체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러스틴은 만물의 궁극적인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사실 외에 자본주의는 구체적 역사를 통해 전개되는 양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인종과 성의 차별주의, 그리고 비자유노동과 결합된 형태가 늘 구조적 조건이 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탄생과 종말이 있는 역사적 체제이기에 다른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데, 생산비용의 장기적 상승으로 오늘날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진단이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체제가 민중과 자본가 계급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에 21세기 중반경에 종언을 고할 것이라 예측한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 이전의 역사적 체제들과 구분되는 두드러진 차이는 그 체제의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은 극소수 집단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분리해온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혹은 7분의 1)를 나머지로부터 분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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