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가 유럽에 보급되면서 몇몇 기물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기도 했다. 기물을 만드는 기공들이 코끼리의 두 엄니를 주교 모자의 두 꼭지로 오해해 코끼리가 비숍(주교)으로 바뀐 것이 좋은 예다.

바이킹들도 폴리네시아인 탐험가들과 마찬가지로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이 1000년에 굳이 새로운 지역들을 탐험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의 탐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사회구조였다. 특히 전사 집단의 역동성이었다. 야심 찬 지도자들이 새로운 영토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세계 여행을 1492년 이전에 유럽과 아메리카 사이에 일어난 특정한 접촉의 한 순간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바이킹이 뉴펀들랜드에 도착한 1000년이 바로 특정한 접촉의 순간이다. 그곳을 기점으로 사료에 묘사된 길들을 따라가며 고고학적 발견을 토대로 다른 길들을 재구성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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