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자유주의시리즈 60 나남신서 1157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김이석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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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구해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특정한 유형의 사상들이 급성장하여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한 상황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왜 최종적으로 특정한 사상 가운데 가장 사악한 요소가 가장 지배적이 될 수 있었는가?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42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Friedrich Augustvon Hayek, 1899 ~ 1992)의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은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答)이다. 간략하게 저자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공산주의나 파시즘(fascism)으로 대표되는 국가사회주의 등 집단주의 사상의 만연되고 이로 인해 과도한 계획으로 인해 자유가 억압되고 통제되면서 '경제적 자유 -> 정치 자유 -> 과학 발전 -> 진보'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끊어졌기에 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유럽 현대사의 전 기간에 걸쳐 사회발전의 일반적 방향은 각 개인들이 일상적 활동을 할 때 관습이나 정해진 방식을 따르게 한 속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개인들의 노력이 자생적이고 통제되지 않더라도 '경제활동의 복잡한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식적 자각은 이런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가 되어서야 나타날 수 있었다.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자 의도치 않았고 예상치 못했던 부산물인 경제활동의 자유로운 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 경제적 자유를 지지하는 일관된 주장이 보다 정교해졌다. 개인의 에너지가 족쇄로부터 해방되자 나타난 가장 큰 결과는 아마도 과학의 경이로운 성장일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53


 <노예의 길>에서 인상 깊은 부문은 하이에크가 바라보는 정치 스펙트럼(spectrum)이다. '극좌-좌-중도-우-극우'라는 일반적인 구분법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극좌(極左)'에, 국가사회주의(파시즘)은 '극우(極右)'에 놓인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일반적인 구분 대신 과감하게 '집단주의'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극좌-극우'의 하나로 묶는 통합을 실현한다. 물론 이들 사상간의 조금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좌파가 강조하는 '계급'과 우파가 강조하는 '민족'의 개념은 무시되고 개인을 억압하는 정체(政體)로 뭉뚱그려버린다. 하이에크의 이론 안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과 1941년 파기 이후 오랫만에 강제로(?) 손을 잡는 셈이다. 


 민족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가 급성장한 것은 사회주의 견해의 만연 때문이었지,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가 공유하던 프러시아주의 때문은 아니었다. 민족사회주의의 발흥은 일반대중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지 프러시아 전통 속에 젖은 계급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었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45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은 공산주의가 환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 도달한 단계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환상이라는 것은 히틀러 이전의 독일에서만큼이나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도 밝혀졌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69


 집단주의 철학의 내재된 모순 가운데 하나는 집단주의가 개인주의가 발전시킨 인본주의적(humanistic) 도덕들에 근거를 두는 반면, 비교적 소규모 집단에서만 실천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론에 머무는 한 사회주의는 국제적이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순간 러시아에서이건 독일에서이건 사회주의는 과격한 민족주의가 된다. 집단주의는 자유주의의 광범한 인본주의를 수용할 여지가 없으며, 다만 전제추의의 비좁은 배타주의를 담고 있을 뿐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211


 하이에크가 이처럼 정치사상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논의하려는 바가 정치사상이 아니라 경제학이고, 비판지점이 '국가'와 '독점'이기에 가능했다. 사회주의 정체에서 경제는 중앙권력에 의해 계획되고 계획에 맞춰 통제된다. 독점은 개인을 억압하는 비효율성으로, 국가는 거대한 독점 기구로서 하이에크에 의해 비판된다. 


 독점은 담합에 의한 합의를 통해 형성되고 공공정책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이들 합의가 무효화될 때, 이런 공공정책들이 역전될 때, 경쟁적 조건은 회복될 수 있다(p89)... 누구라도 독점자들이 정규적으로, 그리고 자주 자신들의 통제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권력의 도움을 얻고자 얼마나 열망하는지 관찰하였다면, 이런 독점화로의 발전이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90


 만약 우리가 산업체제의 성장을 위해 의식적인 중앙집권적 계획에 의존했어야 했더라면, 경쟁을 통해 실제로 도달했던 수주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유연성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결정의 분권화와 자동적 조정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과 비교해 볼 때, 중앙지시(central direction)라는 더 명백한 방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툴고, 원시적이며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95


 그렇다면, 서구에 감돌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불온한 사상을 대신할 대안은 무엇인가? <노예의 길>에서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분리한다. 최종적인 목적은 자유주의, 과정적 수단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이에크의 '자유민주주의' 본질이다. 민주주의 자체로는 완성에 이를 수 없다.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최종 완성형은 '자유민주주의' 이른바 '신(新)자유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정부는 광범하게 수용된 신조 덕분에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다수의 동의가 형성될 수 있었던 분야들에 정부의 기능을 한정시킨 경우에 한해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다. 자유주의 신조의 커다란 장점은 바로 자유주의가 동의가 필요한 주제의 범위를 자유인들의 사회에서 동의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20


 자유는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정치적 이상이다. 훌륭한 행정을 위해 자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사적 삶에서 최고로 가치 있게 여기는 대상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수단이다. 즉, 민주주의는 내적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a utilitarian device)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21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오직 한 경우에만 통제를 허용한다. 바로 국가권력에 대해서다. 하이에크는 국가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정 개입해야 한다면 '돈 되지 않는 사업'에만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특권층을 낳고, 특권층의 탄생은 독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도 속에서 '국가'은 손발을 묶는다면 하이에크가 말한 악(evil)은 소멸될 것인가?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 경쟁이 유효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때에만 비로소 경쟁을 대체하는 일, 그리고 아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거대 사회에 가장 유익하지만 어떤 개인이나 소수의 개인들이 그 비용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이윤이 나지 않는 성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이 일들은 확실히 국가가 해야 할 광범위한 분야들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81


 특정한 물건들을 생산하거나 팔 권리가 당국에 의해 지정된 특정한 사람들에게 유보되었다면, 이것은 특권이다. 그러나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모두가 획득할 수 있는 사적 재산권 자체를 단지 일부의 사람만이 실제로 획득에 성공한다고 해서 특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특권이라는 용어로부터 그 의미를 박탈하는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34


 옛 말에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노릇한다'고 했다. 국가 권력을 묶은 결과 이제는 기득권 계층이 탄생하여 독점보다 나쁜 과점(寡占) 상태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본문에서 하이에크는 계획에 비해 자유가 우수한 이유는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필연(必然)이 아니라 우연(遇然)인 경우 사람들이 더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소득불균형과 교육불평등으로 인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사회구조가 고착화되고있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노예의 길>저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제학 논리로는 신고전학파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세계를 뒤덮고 있지만 점점 암울해지고 있는 독점의 폐해가 국가가 아닌 자유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특권을 가진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이들의 안정과 다른 사람들의 불안의 대비가 더욱 확연해지면서, 점차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가치가 형성될 것이다. 더 이상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위신을 세워주는 것은 강인한 독립심이 아니라 보장이다. 젊은이의 결혼 적합성은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보다는 연금을 탈 확실한 권리가 될 것이다. 한편 젊은 시절에 봉급을 받는 지위의 도피처에 입장을 거절당한다는 것은 최하층 천민의 소름끼치는 상태가 평생 지속된다는 것을 뜻하게 될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97


 세상에는 불평등, 결과에 대한 실망, 불운과 같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이런 일이 그 눈군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 때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불평등은 의도적 설계에 의한 것일 때보다 비인적 힘들에 의해 결정되었을 때 훨씬 더 기꺼이 용납될 것이며, 그 사람의 존엄성에 덜 영향을 미칠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67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1985)은 그의 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3층 구도안에서 자본주의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독점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자유주의의 경제적 조건이 자본주의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노예의 길>에서 거부하는 독점은 국가 대신 힘있는 소수가 대신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현실이 잘 증명해준다.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고전이 된 <노예의 길>이고, 전체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모든 내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래와 같이 자본과 노동의 독점 폐해를 지적하는 저자의 글 속에서 오늘날 정규직 이익만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한계를 볼 수 있다.


 독점은 최근 성장은 대개 조직화된 자본과 노동 사이의 의도적 협력에 따른 결과이며, 이런 의도적 협력을 통해 노동의 특권집단들은 사회의 희생 아래, 특히 가장 빈곤한 계층, 보다 덜 조직화된 산업들과 실업자들의 희생 아래 독점이윤을 공유하고 있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280 


 ' ~로부터의 자유(free from)'와 함께 '누구'의 자유인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신자유주의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노예의 길>은 현대 경제에 관심있는 이들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정치적 자유의 위대한 사도(使徒)들에게 이 용어는 강제(coercion)로부터의 자유, 다른 사람의 자의적 권력(arbitrary power of other men)로부터의 자유, 자신이 소속된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도록 하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약속된 새로운 자유는, 필요로부터의 자유, 불가피하게 우리 모두의 선택범위를 제약하는 상황들의 강제(compulsion)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이전에 '물리적 필요의 압제'(despotism of physical want)가 분쇄되어야 하며, '경제체제의 제약들'(restraints of the economic system)이 느슨해져야 한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65

경제적 관심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필요와 선택의 자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개인으로부터 제거해버릴 때에만 획득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경제적 자유란 선택의 권리를 가진 상태에서 그 권리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위험과 책임을 함께 동반하는, 우리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의미할 따름이다. - P160

정신의 성장을 통제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우리는 단지 그 성장을 제한할 뿐이며, 조만간 생각의 정체와 이성의 쇠퇴를 초래할 것이다. 집단주의 사상의 비극은 이것이 이성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출발하였지만, 이성의 성장이 의존하는 과정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종결된다는 점이다. 사회현상에 대한 개인주의적 접근만이 우리가 이성의 성장을 이끄는 초(超)개인적 힘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반면, 집단주의 교리는 필연적으로 어떤 한 개인의 정신이 숭고하게 지배하여야 한다는 요구로 귀착되게 한다. - P240

물질적 상황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분야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자유‘,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우리 자신의 양심에 따라 꾸려간 결과에 대한 ‘책임‘, 이 두 가지가 그 속에서 도덕적 감성이 자라날 수 있고, 도덕적 가치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 속에서 날마다 재창출되는 토양이다. 자신의 양심에 대한 책임, 강제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의무에 대한 인식,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중 다른 사람을 위해 어느 것을 희생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른 결과의 감수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바로 도덕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도덕의 본질 바로 그것이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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